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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문

한글가지산문
한자迦智山門
유형역사
키워드도의, 일연, 태고 보우, 남종선, 보림사
시대통일신라 말∼고려
관련장소가지사(迦智寺)·보림사(寶林寺), 진전사(陳田寺), 억성사(億聖寺), 무위사(無爲寺)
관련인물도의(道義), 염거(廉居), 체징(體澄), 형미(逈微), 학일(學一), 일연(一然), 혼구(混丘), 태고 보우(太古普愚)
통일신라 말에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성립된 산문
신라 하대에는 중국에서 전래된 선종이 지방에서 세력을 키웠고 교학 중심의 중앙 불교계와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기풍을 선보였다. 선종은 8세기 전에 이미 신라에 소개되었고, 8세기 중반 신행(信行)이 당에서 북종선(北宗禪)을 전해 왔다. 그리고 9세기 초에 도의(道義)가 육조 혜능(惠能)의 남종선(南宗禪) 법맥을 전수해 왔다. 도의는 784년(선덕왕 5) 당에 유학하여 조계산 보림사(寶林寺)의 육조 영당(影堂)을 참배했고,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 서당 지장(西堂智藏)에게 인가를 받았다. 백장 회해(百丈懷海)는 이에 대해 “마조의 선맥이 동국의 승려에게 가겠구나.”라고 평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의는 821년(헌덕왕 13) 귀국 후 중앙 불교계로부터 배척을 당했고,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陳田寺)에 은거해야 했다. 도의의 선풍은 설악산 억성사(億聖寺)의 염거(廉居)에게 계승되었으며, 그 제자가 보조 체징(普照體澄, 804~880)이었다. 체징은 처음에 화엄학을 공부하다가 염거에게 선을 배운 후 837년 당에 유학을 갔다. 840년에 귀국한 뒤 여러 곳을 다니다가 859년 헌안왕의 명으로 장흥의 가지사(迦智寺)로 옮겼다. 체징이 입적하자 헌강왕이 사찰 명칭을 육조 혜능이 주석한 보림사(寶林寺)로 바꾸어 남종선의 정통 계승을 표방했다. 체징의 적전 제자는 강진 무위사(無爲寺)에서 활동한 선각(先覺) 대사 형미(逈微, 864~917)였다. 형미는 891년 당에 유학하여 905년에 신라로 돌아왔는데, 고려 태조의 귀의를 받았다. 가지산문 이후 희양(曦陽)·실상(實相)·동리(銅裏)·봉림(鳳林)·성주(聖住)·사굴(闍崛)·사자(獅子)·수미(須彌) 등의 산문이 형성되었다. 산문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승 관계를 기준으로 한 인적 계보 중심으로 전통을 이어 갔다. 고려 전기에는 구산선문이 선종을 대표했는데, 『고려사』에는 1084년 구산의 문도들이 승과를 볼 수 있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의천(義天)에 의해 천태종(天台宗)이 선종의 하나로 개창된 뒤 기존의 선종은 조계종(曹溪宗)을 표방했다. 가지산문은 고려시대에 세력이 큰 주요 산문이었는데, 예종 대의 왕사 학일(學一, 1052~1144), 『삼국유사』를 쓴 일연(一然, 1206~1289), 일연의 제자이자 충숙왕의 왕사인 혼구(混丘, 1251~1322), 공민왕 대에 왕사와 국사를 역임한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가 가지산문 출신의 이름난 선승이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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