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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관회

한글팔관회
한자八關會
유형역사
키워드연등회, 혜량, 자장, 황룡사
연도551년, 572년, 899년, 918년 이후
시대삼국∼고려
공간경주, 개성, 평양
관련장소황룡사(皇龍寺), 외사(外寺), 법왕사(法王寺)
관련인물진흥왕, 혜량(惠亮), 자장(慈藏), 고려 태조
삼국시대에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국가행사로 치러진 민간신앙과 불교 재회의 결합 의례
팔관회는 원래 인도에서 팔관재계(八關齋戒)라고 하여 재가 신도가 육재일(六齋日)에 하루 밤낮 동안 8개의 계율을 지키는 불교 의식이었다. 즉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를 금하는 5계에 오후 금식 등의 세 규정을 추가하여 이를 엄수했다. 그런데 중국에 와서 남북조 시기에 망자를 위한 위령제로 성격이 바뀌어 한반도에 전해졌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팔관회는 신라 진흥왕 때인 6세기 중반 이후 네 차례 행해졌는데 전몰장병을 위령하는 호국 의례의 성격이 강했다. 551년(진흥왕 12) 고구려에서 온 혜량(慧亮)을 승통(僧統)으로 삼고 팔관회를 처음 시행했고, 이어 572년에 전사한 이들을 위한 팔관회를 외사(外寺)에서 7일 동안 베풀었다. 세 번째는 자장(慈藏)이 귀국 후 645년(선덕여왕 14) 황룡사(皇龍寺) 9층 목탑을 세운 뒤 팔관회를 개최하고 죄인을 사면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통일신라 말인 899년(효공왕 3)에 행해졌다. 고려시대에는 팔관회가 국가 차원의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고려 태조는 「훈요십조」에서 “팔관회는 천령(天靈) 및 오악(五岳)·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을 섬기는 것이다. 내가 마음에 맹세하여 연등회와 팔관회 때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기로 했으니 마땅히 이대로 거행할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팔관회가 전통적인 제천(祭天)의식 및 산천용신제(山川龍神祭)와 결합하여 이어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918년에 태조는 위봉루(威鳳樓)에서 팔관회를 열었고 ‘부처를 공양하고 신을 즐겁게 하는 모임(供佛樂神之會)’이라고 했다. 팔관회는 매년 10월 15일에 서경(평양), 11월 15일에 개경에서 열렸다. 이 시기는 고유의 수확제와 맞물려 있어 축제적 특성이 강했고, 중국에서 위령제 및 치병(治病)에 목적을 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또한 서경의 팔관회는 조상제의 성격을 띠었고 재상급이 파견되었다. 개경의 팔관회 때는 지방관이 하례를 올리고 중국의 상인이나 외국의 사절이 와서 선물을 바치고 교역을 했다. 『고려사』를 보면 팔관회 전날 국왕이 법왕사(法王寺)에 행차하는 것이 관례였다. 본 행사에는 궁에서 군신이 모여 헌수(獻壽)와 지방관의 선물 봉정이 이루어졌고, 수많은 승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반승 의식이 거행되었다. 팔관회가 열리는 공간에는 사방에 향등을 달고 채붕(綵棚)을 세우는 등 매우 장엄하고 화려한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포구락(抛毬樂) 등 온갖 가무와 공연이 펼쳐졌다. 문종 때는 비용을 마련하고 행사를 주관하는 관청으로 팔관보(八關寶)가 설치되었다. 원간섭기에 일시 중단되는 등 부침 속에서도 고려 말까지 이어지다가 조선이 개국하고 폐지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관련자료

  • 연등회·팔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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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의 불교의례와 문화: 연등·팔관회와 제석도량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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