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태고법통 |
|---|---|
| 한자 | 太古法統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태고 보우, 편양 언기, 청허 휴정, 해동불조원류 |
| 연도 | 17세기 이후 |
| 시대 | 조선 후기 |
| 공간 | 전국 |
| 관련인물 | 태고 보우, 벽송 지엄, 청허 휴정, 편양 언기 |
17세기 전반 편양 언기에 의해 정립된 조선불교의 정체성 인식으로 고려 말 태고 보우가 전해 온 임제종 법맥을 정통으로 확정
임진왜란이 끝나고 17세기 초에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표명한 법통 인식이 제기되었다. 처음 나온 것은 1610년대 초에 사명파의 주도하에 허균(許筠)이 쓴 ‘고려나옹법통’이었다. 이는 고려 광종 때 중국 법안종(法眼宗)의 기풍을 전해 온 도봉 영소(道峯靈炤)를 초조로 내세웠고 조동종(曹洞宗), 임제종(臨濟宗) 등 고려의 다양한 선종 전통과 보조 지눌(普照知訥)을 강조한 후, 나옹 혜근(懶翁惠勤)이 중국 임제종 선승 평산 처림(平山處林)으로부터 전수한 법이 계승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1620년대 중반부터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가 ‘임제태고법통’을 주장하였다. 당시 이정구(李廷龜), 장유(張維) 등 명문장가에게 의뢰하여 새로 만든 휴정의 비문과 『청허당집』 서문에서 새로운 법통을 내세워 공론화했다. 여러 산문의 공의를 모으는 노력 끝에 이후 조선불교의 공식 법통으로 자리 잡았다.
태고법통은 고려 말의 선승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가 원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에게서 전해 온 임제종의 법맥을 정통으로 내세운 것으로, 보우 이후 환암 혼수(幻庵混修)-구곡 각운(龜谷覺雲)-벽계 정심(碧溪淨心)-벽송 지엄(碧松智儼)-부용 영관(芙蓉靈觀)을 거쳐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에게 이어졌다고 보았다.
앞서 휴정은 조사인 벽송 지엄이 “연희(衍熙) 교사로부터 원돈(圓頓) 교의를, 정심(正心) 선사로부터 서래(西來)의 밀지를 배우고 깨쳤다.”라고 하면서도 송의 대혜 종고(大慧宗杲)와 원의 고봉 원묘(高峰原妙)로부터 임제종 간화선법을 멀리 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17세기에 들어 이처럼 법통설이 새로 등장한 것은 중화(中華) 정통이 중시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윤리적 문제와 대의명분을 내세워 인조반정(1623)이 일어났고, 이어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겪으면서 중화 정통주의가 강조되었다. 태고법통에도 중국 선종의 주류인 임제종 정맥을 조선불교가 이어받았다는 정통론적 사고가 담겨 있다. 또 조선을 개창하고 정국을 운영한 훈척 세력을 빼고 비주류 학맥을 통한 도학 전승을 공식화한 유교의 도통과 비슷하게, 불교의 법통에서도 조선 초 불교계를 주도한 무학 자초(無學自超), 함허 기화(涵虛己和) 등 나옹계 주류를 배제했다.
이렇게 정립된 태고법통은 조선불교의 전통을 임제 선종으로 표명한 것으로 이후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1764)에서도 이를 기준으로 법맥 계보를 기재했고, 지금까지도 그 역사적 권위를 잃지 않고 있다. 한편 17세기 전반에는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의 계보를 이은 청허계와 부휴계의 계파 및 문파가 형성되었다. 정체성을 공유하는 법통 정립과 법맥을 매개로 한 문파의 조직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조선 후기 불교의 정체성 확립과 교단 존립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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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님은 임제(臨濟)의 적종(嫡宗)이시다. 원나라 말기에 석옥(石屋) 화상이 고려의 태고(太古) 선사에게 전하였고, 태고는 환암(幻庵)에게 전하였고, 환암은 귀곡(龜谷)에게 전하였고, 귀곡은 정심(正心)에게 전하였고, 정심은 지엄(智嚴)에게 전하였고, 지엄은 영관(靈觀)에게 전하였고, 영관은 우리 스님에게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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