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조계종 |
|---|---|
| 한자 | 曹溪宗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보조 지눌, 선교양종, 선종, 흥천사 |
| 연도 | 1424년(세종 6) 이전, 1941년 이후 |
| 시대 | 고려 후기∼조선 전기 |
| 공간 | 전국 |
| 관련장소 | 통도사, 쌍암사, 연화사, 보리갑사, 빙산사, 정각사, 석남사, 인각사, 가지사, 징광사, 동리사, 영각사, 법주사, 정림사, 도갑사, 덕천사, 홍법사, 가림사, 지곡사, 지륵사, 만덕사, 장곡사, 천흥사, 석남사 |
| 관련인물 | 보조 지눌 |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까지 선종을 대표하는 불교 종파
중국 선종의 육조 혜능(慧能)이 주석한 조계산(曹溪山)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고려 후기부터 선종을 대표하는 종파명이었다. 1125년 조응(祖膺)이 조계종 승과(僧科)인 조계선(曹溪選)에 합격했다는 기록이 있고, 1172년 건립된 탄연(坦然)의 비 ‘조계종 굴산하 단속사 대감국사지비(曹溪宗崛山下斷俗寺大鑑國師之碑)’에도 조계종 명칭이 보인다. 보조 지눌(普照知訥)이 1190년 수선사(修禪社)를 열기 전에 이미 조계종 종명이 널리 쓰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당시 조계종은 천태종(天台宗)과 함께 오교양종(五敎兩宗)의 양종을 이루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선종의 대표 종파라는 위상은 유지되었지만, 불교 종파의 축소와 통합이라는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1406년(태종 6) 11개 종 242개 사찰만을 승정 체제 아래에 두고 정해진 사사전(寺社田)과 사사노비(寺社奴婢)를 인정하는 대신, 다른 사찰들의 전지와 노비는 속공했다. 당시 11개 종파에 들어갔던 조계종과 총지종(摠持宗)에는 합쳐서 70개의 사찰이 지정되었다.
이듬해에는 11종을 조계종,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시흥종(始興宗), 중신종(中神宗), 총남종(摠南宗)의 7종으로 다시 줄였다. 이와 함께 읍내 자복사(資福寺) 88개를 산중의 명찰(名刹)로 대체했는데, 조계종은 양주 통도사(通度寺), 송생 쌍암사(雙巖寺), 창녕 연화사(蓮花寺), 지평 보리갑사(菩提岬寺), 의성 빙산사(氷山寺), 영주 정각사(鼎覺寺), 언양 석남사(石南寺), 의흥 인각사(麟角寺), 장흥 가지사(迦智寺), 낙안 징광사(澄光寺), 곡성 동리사(桐裏寺), 감음 영각사(靈覺寺), 군위 법주사(法住寺), 기천 정림사(淨林寺), 영암 도갑사(道岬寺), 영춘 덕천사(德泉寺), 남양 홍법사(弘法寺), 인동 가림사(嘉林寺), 산음 지곡사(地谷寺), 옥천 지륵사(智勒寺), 탐진 만덕사(萬德寺), 청양 장곡사(長谷寺), 직산 천흥사(天興寺), 안성 석남사(石南寺) 등 24개 사찰이 새로 승정 체제에 들어갔다.
1424년(세종 6)에는 7개 종파를 다시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했는데, 조계종은 천태종·총남종과 함께 선종이 되었고, 화엄종·자은종·중신종·시흥종은 교종이 되었다. 이때 승록사(僧錄司)가 폐지되고, 대신 선종과 교종의 도회소(都會所)가 서울 흥천사(興天寺)와 흥덕사(興德寺)에 설치되었다. 선종과 교종에는 각각 18개씩, 총 36개의 사찰이 지정되었고, 승려 수는 3,770명, 사사전은 7,900여 결이 인정되었다. 이로써 종파로서의 조계종은 사라지게 되었지만, 조선 전기까지 선종 승려는 ‘조계종의 후예’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중종 대에 선교양종이 혁파되고 명종 때에 일시 재개되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정식 종파 명칭이 없었다. 그러다 근대기에 조계종 종명이 다시 등장하여 1941년에 종단 명칭이 되었고, 1962년에는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이 설립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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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懶翁)을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王師大曹溪宗師禪敎都摠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에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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