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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

한글원종
한자圓宗
유형역사
키워드이회광, 한용운, 원흥사, 각황사,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범어사
연도1908년
시대근대
공간서울
관련장소원흥사(元興寺), 각황사(覺皇寺)
관련인물이회광(李晦光)
1908년에 한국 불교계의 대표 52명이 서울 원흥사(元興寺)에서 창종한 근대기 최초의 종단
대한제국 시기인 1902년 4월 궁내부 칙령으로 서울의 원흥사(元興寺)에 사사관리서(寺社管理署)가 설치되고 도섭리(都攝理)가 두어졌다. 또 대법산(大法山)인 원흥사와 지방 16개의 중법산(中法山)을 정해 전국의 사찰을 관리했다. 당시의 사찰관리법규인 「사찰령」 36조는 사찰재산의 국가 관리와 승려 자격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도첩제(度牒制) 시행이 핵심이었다. 이는 16세기 이후 처음으로 국가에 의해 불교 교단의 관리와 통제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사찰령과 사사관리서 체제는 일본의 정치적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1904년에 폐지되었다. 이후 1906년 통감부는 일본불교의 한국 사찰 관리 허용을 골자로 하는 「사찰관리규칙」을 시행했다. 1908년에는 한국불교 통합종단인 원종(圓宗)이 창설되었다. 이는 불교계의 대표 52명이 서울 원흥사에 모여서 세운 근대기 최초의 종단이었다. 이때 해인사(海印寺)의 이회광(李晦光, 1862~1932)이 종무원장이 되었다. 1910년 5월에는 전국에서 모금을 하여 4대문 안의 종로구 수송동에 각황사(覺皇寺)가 세워졌고 원종 종무원이 이전했다. 한편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한국포교 책임자인 다케다 한시(武田範之)가 「권불교재흥서(勸佛敎再興書)」를 써서 선종인 조동종을 중심으로 일본불교와 조선불교의 통합을 권장했다. 이회광은 이를 받아들여 1910년 8월 강제병합 직후인 10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원종과 일본 조동종과의 연합조약을 비밀리에 체결했다. 이 사실이 국내에 전해지자 불교계 일각에서는 이를 종파를 팔고 조사를 바꾸는 ‘매종역조(賣宗易祖)’의 망동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 결과 대안으로 한국불교의 선종 전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임제종(臨濟宗)을 건립했다. 1911년 1월 송광사(松廣寺)에서 한용운(韓龍雲, 1879~1944) 등이 참여하여 회의를 열고 임시종무원을 설치했다. 이후 범어사(梵魚寺)에 정식 종무원을 두고 삼보사찰인 통도사(通度寺), 해인사, 송광사를 3본산으로 삼아 영호남에서 세력 확장을 꾀했다. 임제종은 한국불교와 일본 조동종의 계통과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연합을 반대하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독자적 세력화를 도모한 임제종은 총독부의 인가를 얻지 못했다. 또한 조동종과 연계된 원종 또한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는데, 이는 일본의 여러 불교 종파 가운데 특정 종파가 한국불교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조선총독부는 한국불교를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정했다. 이에 1911년 6월에 「사찰령」을 반포하고 7월에 「시행규칙」을 제정하여 9월부터 시행했으며, 이듬해에는 종명을 조선불교 선교양종이라고 하고 30본산 체제를 출범시켰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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