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오교양종 |
|---|---|
| 한자 | 五敎兩宗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계율, 법상, 법성, 원융, 열반, 조계종, 천태종, 화엄종, 자은종, 총남종, 중신종, 시흥종, 선교양종 |
| 연도 | 13세기∼15세기 전반 |
| 시대 | 고려 후기∼조선 전기 |
| 공간 | 전국 |
| 관련장소 | 흥천사, 흥덕사 |
| 관련인물 | 의천 |
고려 후기와 조선 초에 교종과 선종의 주요 불교 종파들을 통칭한 명칭
고려 후기에 선종과 교종의 불교 종파들을 통칭하는 명칭이었다. 11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 이전에는 선종을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구산, 또는 선적종(禪寂宗)으로 불렀고, 교종을 대표하는 것은 계율(戒律), 법상(法相: 유식), 법성(法性: 중도), 원융(圓融: 화엄), 열반(涅槃)의 오교였다. 이후 기존의 선종은 조계종(曹溪宗)으로 칭했고, 의천에 의해 새로 세워진 천태종(天台宗)도 선종에 포함되었다.
‘오교양종(五敎兩宗)’ 용어가 현존하는 기록에서 처음 확인되는 것은 고려 원종 (재위 1260∼1274) 때인데, 오교(五敎)는 계율, 법상, 법성, 원융, 열반으로 대표되는 교종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고, 양종(兩宗)은 선종에 속하는 조계종, 천태종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조선 초에도 불교 종파 전체를 칭할 때 교종과 선종을 아우르는 오교양종 용어가 관행적으로 쓰였다. 다만 태종 대에 11개 종파를 7개로 축소할 당시는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총남종(摠南宗), 중신종(中神宗), 시흥종(始興宗)이 오교에 해당하고, 양종은 그대로 조계종과 천태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세종 대인 1424년(세종 6)에는 7개 종파를 다시 선교양종으로 통폐합하면서 오교양종이란 용어나 관념이 더는 실효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조계종, 천태종, 총남종은 선종으로 합쳐졌고 화엄종, 자은종, 중신종, 시흥종은 교종이 되었다. 또 기존의 불교 관리기구인 승록사(僧錄司)를 폐지하고 선교양종의 도회소(都會所)를 각각 서울의 흥천사(興天寺)와 흥덕사(興德寺)에 두었다. 도회소는 도승(度僧)과 승과(僧科) 등 승려 인사를 주로 담당했는데, 선종의 시험 교재는 『전등록(傳燈錄)』과 『선문염송(禪門拈頌)』, 교종은 『화엄경(華嚴經)』과 『십지론(十地論)』이었다.
이와 함께 선종과 교종 각 18사, 모두 36개의 사찰이 승정 체제 안에서 관리되었다. 승려 수는 선종 1,970명, 교종 1,800명, 총 3,770명이 허용되었고, 사사전(寺社田)은 선종 4,250결, 교종 3,700결, 합쳐 7,950결이 인정되었다. 이후 성종 대에 반포된 『경국대전』에 선교양종과 도승, 승과에 관한 규정이 수록되었지만, 16세기 초 중종 대에 선교양종과 도회소가 혁파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
五敎(華嚴宗ㆍ慈恩宗ㆍ摠南宗ㆍ中神宗ㆍ始興宗) 兩宗(曹溪宗ㆍ天台宗)의 歷史를 略述하엿거니와 今回에는 五敎兩宗이 禪宗敎宗으로 된 事相을 陳述코저 한다.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