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아미타신앙 |
|---|---|
| 한자 | 阿彌陀信仰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의상, 부석사, 요세, 백련사, 현행서방경, 염불문 |
| 시대 | 삼국 이후 |
| 관련장소 | 부석사(浮石寺) |
| 관련인물 | 의상(義湘), 요세(了世) |
아미타불의 타력에 의해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정토신앙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주재하는 서방 극락정토(極樂淨土)로 가기를 바라는 정토신앙이다.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을 외면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해 왕생이 가능한 타력신앙이다. 법장(法藏)비구가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한 뒤에 성불하겠다는 48개의 서원을 세웠지만 끝이 보이지 않자 결국 아미타불이 되어 서방에 극락정토를 만들었고, 누구라도 그 원력에 의해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극락세계는 현세와 내세를 아우르는 이 사바세계를 벗어나 서방에 별도로 만들어진 아미타불의 정토이다. 사람이 죽으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6도 윤회를 반복하기 때문에 그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열반(해탈)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 가르침이다. 하지만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해 서방 극락정토로 왕생하면 더는 윤회의 쳇바퀴를 돌지 않고 부처의 세계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미타신앙은 『아미타경(阿彌陀經)』,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등을 소의경전으로 하며,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는 칭명(稱名)만으로도 왕생할 수 있었기에 동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신라에서 아미타 정토신앙은 7세기 중반부터 크게 유행하여 왕족, 귀족층부터 서민과 천민까지 모든 계층에 널리 퍼졌다. 문무왕이 동생 김인문(金仁問)을 위해 설치한 아미타도량, 염불을 통해 살아서 바로 서방세계로 간 노비 욱면(郁面)의 설화처럼 『삼국유사』 등에 담긴 여러 기록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해동 화엄의 조사인 의상(義湘, 625∼702)이 창건한 부석사(浮石寺)에도 주존불로 아미타불이 모셔진 사실이다.
아미타신앙은 고려시대에도 성행했는데 백련사(白蓮社) 결사를 일으킨 천태종의 요세(了世, 1163∼1245), 고려불화의 아미타불 관련 그림, 『현행서방경(現行西方經)』의 찬술 등에서 아미타 정토신앙이 중시된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여서 염불을 통해 극락정토로의 왕생을 기원하는 정토신앙이 널리 퍼졌다. 조선 후기의 삼문 수행체계에서도 선과 교와 함께 염불문(念佛門)이 들어갔는데 이는 염불선(念佛禪) 수행과 서방 극락정토로의 왕생을 기원하는 염불신앙을 아우른 것이었다. 아미타신앙의 확산은 염불계(念佛契)나 만일염불결사의 결성을 낳기도 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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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有天唱於空 郁面娘入堂念佛 寺衆聞之 勸婢入堂 隨4)例精進 未幾天樂從西來 婢湧透屋5)樑而出 西行至郊外 捐骸變現眞身 坐蓮臺放大光明 緩緩而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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