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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파

한글소요파
한자逍遙派
유형역사
키워드소요 태능, 청허 휴정, 대흥사(대둔사), 백련사(만덕사), 백양사
연도17세기 이후
시대조선 후기
공간전라도
관련장소대둔사, 미황사
관련인물소요 태능, 침굉 현변, 호암 약휴, 해운 경열, 취여 삼우, 화악 문신, 아암 혜장
소요 태능의 법맥을 이은 문파로 조선 후기에 전라도 지역 사찰을 중심으로 활동
조선 후기 불교계는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청허계와 부휴 선수(浮休善修)의 부휴계로 양분되었다. 휴정의 높은 위상으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던 청허계는 다시 소요파, 사명파, 정관파, 편양파의 4대 문파로 나뉘었다. 휴정의 제자 소요 태능(逍遙太能, 1562∼1649)의 계보를 잇는 소요파는 지리산과 호남 지역을 주요 근거지로 하여 출발하였다. 태능은 장성 백양사에서 출가했고 처음에 부휴 선수에게 교학을 배운 후 휴정의 선법을 이었다.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활약했고 이후 남한산성 축성에도 관여했으며, 뒤에 ‘충군우국’의 공을 인정받아 1652년 효종에게 혜감(慧鑑)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태능은 지리산 유역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다가 구례 연곡사에서 입적하였다. 태능에게 선법을 전수받은 침굉 현변(枕肱懸辯, 1616∼1684)은 선암사에 주석했고 송광사와 연곡사 등에 연고를 두었다. 이처럼 소요파는 지리산권에서 시작하여 순천을 거쳐 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 강진 만덕사(백련사), 담양 용흥사 등 호남 일대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한편 현변의 문도 호암 약휴(護巖若休, 1664∼1738)는 북한산성 8도도총섭을 역임했는데, 1736년(영조 12) 승군의 교대 입역(立役) 폐해를 상주하여 이후 방번전(防番錢)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소요파와 대둔사의 관계는 태능의 제자로서 교법을 배운 해운 경열(海運敬悅, 1580∼1646)이 대둔사 법회에 온 태능의 법을 이으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제자 취여 삼우(醉如三愚, 1622∼1684)도 대둔사에 주석했는데 화엄 강의로 유명하여 대둔사 제2대 종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화엄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화악 문신(華嶽文信, 1629∼1707) 또한 대둔사 화엄법회를 맡았고, 편양파 월저도안(月渚道安, 1638∼-1715)에 이어 제4대 종사가 되었다. 이처럼 소요파는 17세기에 대둔사에 뿌리를 내리면서 화엄 강학을 계승하였고 그 결과 18세기에는 편양파와 공조하여 8도의 종원을 표방한 대둔사 12대 종사와 강사의 전통을 만들어 냈다. 정약용에게 『주역』과 시를 배운 소요파 아암 혜장(兒菴惠藏, 1772∼1811)은 제12대 강사로서 명성을 떨쳤다. 1798년에 중간된 『소요당집』 서문에는 “조사 문중에서 사명은 교종이고 소요와 편양은 선종으로 한때 병치하였다.”라고 하여 편양파와 선종의 정체성을 공유하였고, 『대둔사지』에도 “휴정의 문도 가운데 가풍이 총림을 뒤흔든 이는 소요 태능과 편양 언기였고 수백 년간 그 문호가 번창하였다.”라고 표명했다. 다만 19세기에 소요파는 『만덕사지』를 펴낸 만덕사(백련사)를 주요 근거지로 삼았고, 『대흥보감』(1912)에서 자파의 독자적 전통 인식을 드러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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