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선교겸수 |
|---|---|
| 한자 | 禪敎兼修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의천, 보조 지눌, 청허 휴정, 선가귀감 |
| 관련인물 | 징관(澄觀), 종밀(宗密), 연수(延壽), 의천(義天), 지눌(知訥), 휴정(休靜) |
부처의 마음과 말씀에 연원을 둔 선과 교를 함께 닦는 수행 방식
선(禪)과 교(敎)를 함께 닦는 선교겸수(禪敎兼修)는 선과 교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선교일치(禪敎一致)의 입장을 전제로 한다. 선은 부처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식으로 전승한 마음이었고, 교는 언어·문자의 방식으로 전한 부처의 말씀이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된 후 경전이 한역되고 교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다. 이후 선종이 등장하면서 교학에 대비되는 자파의 특성을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선전하며 우월적 인식을 제기했다.
선과 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차별과 우열, 융합과 회통 등 다양한 입장이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당(唐)의 화엄종 4조 청량 징관(淸凉澄觀, 738~839)이 교학과 관행(觀行)을 함께 닦는 교관(敎觀)겸수를 수용한 뒤에 화엄종 5조 규봉 종밀(圭峰宗密, 780~840)에 의해 선교일치가 주창되었다. 종밀은 처음에는 선(禪)을 익히다가 뒤에 화엄교학을 공부하고 『원각경(圓覺經)』을 중시하는 등 선과 교에 모두 정통한 융합론자였다. 선교일치에 기반한 선교겸수론은 이후 송대를 거치며 불교의 주류적 경향이 되었다.
송대 초기에 선종 5가의 하나인 법안종(法眼宗)의 영명 연수(永明延壽, 904~975)가 『종경록(宗鏡錄)』 등에서 선교일치의 기조를 계승함과 함께 선과 정토의 선정(禪淨)일치를 내세우면서 융합적 경향이 더 강화되었다. 이후로 선교겸수는 물론 대중적 염불신앙과 선 수행을 겹합시킨 염불선(念佛禪)의 경향이 유행했다.
한국의 경우 통일신라 말에 선이 들어오면서부터 선과 교의 위상이나 그 우열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되었고 융합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나말여초에는 중국에 다녀온 선승에 의해 선종 우위론이 제기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선종과 교종이 병립하는 가운데 전기에는 화엄종(華嚴宗)·법상종(法相宗)의 교종, 후기에는 조계종(曹溪宗) 중심의 선종이 주류가 되었다. 이를 반영하여 의천(義天, 1055~1101)은 교학 위주의 교관겸수,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은 선종 우위의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추구했다.
조선시대에 들어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은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간화선(看話禪) 우위의 선교겸수론을 제시했다. 17세기에 나온 『선교총판문(禪敎摠判門)』에서는 선교 융합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선과 교를 겸수하는 강원 교육과정인 이력(履歷)과정이 정립되었고 선·교·염불을 함께 닦는 삼문(三門)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또한 임제종(臨濟宗) 법통을 내세우면서도 화엄을 비롯한 교학이 중시되었다. 이처럼 선교겸수와 융합의 흐름은 시대가 갈수록 강화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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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大法)이 동방으로 흘러들어 온 뒤로부터 선(禪)과 교(敎)가 병행되었는데, 선은 마음으로써 전해지고, 교는 언어에 기초하여 홍포(弘布)되었다. 선이 전해지고 교가 홍포되었으므로 우리 불교의 도가 성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근원의 물결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하자, 선과 교로 문(門)이 나뉘었다. 선은 돈(頓)과 오(悟), 점(漸)과 수(修)로 나뉘었고, 교는 성(性)과 상(相)으로 나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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