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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파

한글사명파
한자四溟派
유형역사
키워드사명 유정, 청허 휴정, 건봉사, 유점사, 해인사, 법통
연도17세기 이후
시대조선 후기
공간금강산, 경상도
관련장소건봉사, 유점사, 해인사, 밀양 표충사
관련인물사명 유정, 송월 응상, 허백 명조, 춘파 쌍언, 허곡 나백
사명 유정의 법맥을 이은 문파로 조선 후기에 금강산과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
조선 후기 불교계는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청허계와 부휴 선수(浮休善修)의 부휴계로 양분되었다. 휴정의 높은 위상으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던 청허계는 다시 사명파, 정관파, 소요파, 편양파의 4대 문파로 나뉘었다. 휴정의 전법 제자였던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의 계보를 잇는 사명파는 원래 청허계를 대표하는 문파였다. 유정은 직지사에서 출가하였고, 금강산 건봉사에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원도 승군을 일으켰으며, 휴정을 이어 8도 도총섭이 되어 의승군을 통솔했다. 전란이 끝난 후에는 일본과의 교섭을 맡아 에도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하였고, 만년에 해인사에 주석하다가 입적했다. 유정의 수제자 송월 응상(松月應祥, 1572∼1645)은 금강산 유점사, 오대산 등에 주석했고, 1624년 남한산성 축성 때 8도 도총섭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다. 대신 문도 허백 명조(虛白明照, 1593~1661)가 유정의 승장 활동을 이어 1627년 정묘호란 때 승병장이 되어 평안도에서 4천 명의 승군을 이끌었다. 명조는 보현사에서 입적했는데 묘향산에 있던 휴정의 바리와 가사를 해남 대둔사에 보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 『승가예의문(僧家禮儀文)』을 지어 문파 내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규정했다. 응상의 또 다른 제자인 춘파 쌍언(春坡雙彦, 1591∼1658)은 유점사에 머물다 입적했고, 그의 문도 허곡 나백(虛谷懶白, 1604∼1681)도 금강산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처럼 사명파는 금강산과 묘향산 같은 북방에서 시작해 점차 영남 지역으로 세력권을 확장하였고, 유정을 현창하며 문파의 위상을 높여 나갔다. 하지만 18세기 이후에는 편양파에 주류 문파의 자리를 내주었고, 금강산 일대와 경상도 지역에서 세력을 이어 갔다. 한편 1610년대 초 허균(許筠)에 의해 제기된 ‘고려나옹법통’은 유정 입적 후 사명파에서 의뢰한 것으로 법안종, 조동종, 임제종 등 고려의 다양한 선종 전통과 보조 지눌(普照知訥)의 위상을 강조한 후, 고려 말 나옹 혜근(懶翁惠勤)이 전수해 온 임제종의 정통 법맥이 휴정에게까지 이어졌다고 보았다. 하지만 1618년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되고 편양 언기가 1625년부터 제기한 ‘임제태고법통’이 공식화되면서 ‘고려나옹법통’은 설 자리를 잃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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