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부휴계 |
|---|---|
| 한자 | 浮休系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부휴 선수, 벽암 각성, 무용 수연, 백암 성총, 묵암 최눌, 송광사, 화엄사 |
| 연도 | 17세기 이후 |
| 시대 | 조선 후기 |
| 공간 | 전라도, 경상도와 충청도 일부 |
| 관련장소 |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법주사, 은해사 |
| 관련인물 | 부휴 선수, 벽암 각성, 백암 성총, 모운 진언, 회암 정혜, 묵암 최눌 |
부휴 선수의 법맥을 이으면서, 조선 후기에 호남을 중심으로 활동한 계파
부휴계는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의 법맥을 계승한 계파로서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청허계와 함께 조선 후기 불교계의 양대 세력을 이루었다. 휴정과 선수는 부용 영관(芙蓉靈觀)의 동문 제자였고 선수 당시에는 법맥 인식이나 가풍에서 양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부휴계는 선수의 수제자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에 의해 독자적 계파로 성장했다. 각성은 초대 남한산성 8도 도총섭으로서 병자호란 때 항마군 3천을 일으켰고 화엄사, 법주사, 쌍계사 등을 중창했다. 그의 문하에서 취미 수초(翠微守初), 백곡 처능(白谷處能) 등의 8파가 번성했다. 각성 이후 주류 계보는 취미 수초-백암 성총(栢庵性聰)-무용 수연(無用秀演)-영해 약탄(影海若坦)-풍암 세찰(楓巖世察)-묵암 최눌(黙庵最訥) 등으로 이어졌다.
각성의 손제자 백암 성총(1631∼1700) 대에 이르러서는 송광사 보조 지눌(普照知訥)의 유풍을 내세워 계파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졌다. 성총은 불서 간행에도 힘썼는데, 1681년 임자도에 표착해 온 중국 가흥대장경 불서를 징광사, 쌍계사 등에서 대규모로 간행하여 유포시켰다. 이를 계기로 18세기에는 화엄을 비롯한 강학이 매우 성행했고, 다수의 주석서가 나왔다.
부휴계는 송광사를 본거지로 삼았는데 부도전에는 선수 이후 정통 계보를 이은 고승들의 탑이 일렬로 세워졌다. 화엄사도 부휴계의 주요 근거지였고 전라도 일대는 물론 충청도의 법주사, 경상도의 은해사, 해인사 등에도 연고를 가졌다.
부휴계는 각성의 제자인 모운 진언(暮雲震言)에서 회암 정혜(晦庵定慧)를 거쳐 이어져 온 교학 계보로도 유명하다. 진언은 『화엄경』을 연구하여 은해사에서 화엄법회를 열었고, 정혜는 당대의 학장들에게 배운 후 석왕사 등 전국에서 강석을 열었으며 『도서』와 『절요』, 『화엄경』에 대한 주석서를 썼다. 부휴계의 주류 법맥을 이은 묵암 최눌도 화엄학자로서 이름났고 편양파 연담 유일(蓮潭有一)과 불교 심성 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부휴계는 근대기까지도 세력을 유지했는데, 1912년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본말사법」에서 부휴계 법손만 주지를 할 수 있는 본사는 송광사 하나였고, 청허계와 부휴계 어느 쪽에서도 주지가 될 수 있는 본사는 부휴계와 인연이 있던 법주사와 은해사, 동화사였다. 이처럼 부휴계는 청허계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독자적 계파로서 근대기까지 자파의 전통과 계파 인식을 이어 왔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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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臨濟) 후 24세 적손(嫡孫)이 되는 부휴(浮休)가 있다. 부휴는 호이고 법명은 선수(善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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