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배불론 |
|---|---|
| 한자 | 排佛論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불씨잡변 |
| 연도 | 14세기 이후 |
| 시대 | 고려 후기∼조선 |
| 관련인물 | 정도전(鄭道傳) |
고려 말과 조선 전기에 집중적으로 제기된 불교 비판론으로, 억불정책의 이론적 기반
배불론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전통 사상인 유교와 도교 측의 불교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주요 논점은 충과 효의 윤리적 흠결, 윤회와 인과응보 문제, 중화와 오랑캐의 차이를 논하는 화이론(華夷論), 승려의 면역 혜택과 국가 재정 부족 등 다양했다. 이후 당나라 한유(韓愈)의 「논불골표(論佛骨表)」를 거쳐 송대 유학자들의 배불론으로 이어졌다.
고려 말인 14세기에는 성리학의 수용과 함께 배불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조선 개국 후 배불의 논조가 강화되며 태종 대의 억불정책으로 가시화되었다. 이는 사원의 경제력이 너무 커서 국가의 재정 안정을 위해 그 규모를 줄여야 했던 현실과도 관련이 있었다. 배불론은 정치·경제의 당면한 문제뿐 아니라 인륜이나 내세관처럼 유교와 불교가 서로 부딪치는 지점에 대한 정면공격으로도 이어졌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유학자들은 고려의 사상 전통인 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주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14세기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제기된 배불론은 첫째 토지와 노비 등 사원이 가진 막대한 경제적 기득권을 문제시한 현실적 억불론, 둘째 유교와 배치되는 불교의 윤리적 문제와 심성론, 내세관에 대해 이단(異端)을 척결하자는 이론적 척불론으로 나눌 수 있다.
현실적 억불론으로는 이색(李穡)이 1351년 공민왕에게 올린 상서에서 “불교의 오교양종(五敎兩宗)이 이익을 위한 소굴이 되고 놀고먹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도첩(度牒)이 없는 승려는 군오(軍伍)에 충당하고 양민이 함부로 승려가 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여, 국역체계를 흔드는 불교의 폐단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조선 개창 후에는 불교가 국가에 해가 되며 창업의 기반을 닦는 데 저해된다는 논조가 대세였다.
이단을 척결하는 척불론은 고려 말까지만 해도 유교와 불교의 공존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조선 초에는 공세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대표적 배불서인 정도전(鄭道傳)의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는 주자(朱子)의 불교 비판론을 계승하여 인과응보와 화복설을 혹세무민으로 몰았고, 불교의 심성론에 대해 마음의 작용을 절대시한 허무공적한 가르침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결론적으로 불교는 도학에 해가 되는 바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에 비할 바가 아닌 이단 중의 이단이라고 맹공격했다. 이에 대해 권근(權近)은 『불씨잡변』 서문에서 “맹자(孟子)를 계승해 이단을 배척하고 도학을 드높였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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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世之排佛。莫若韓退之歐陽脩之輩。退之之貶潮州也。常常問法於大顚。末後於侍者邉。得介入路。脩之致仕也。亦以六一居士稱之居士之名。學佛之名也。以是稱之則知有佛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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