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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파

한글문파
한자門派
유형역사
키워드청허계, 부휴계, 정관파, 소요파, 사명파, 편양파, 태고법통
연도17세기 이후
시대조선 후기
공간전국
조선 후기에 같은 법맥 계보를 이으며 정체성을 공유한 승려 집단
조선 후기에는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청허계와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의 부휴계가 양대 계파를 이루었고 그 안에서 많은 문파가 갈라져 나왔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키고 8도 도총섭을 역임한 휴정의 높은 위상으로 청허계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여 정관파, 사명파, 소요파, 편양파의 4대 문파가 나왔고, 부휴계는 비교적 단일한 계통으로 이어졌다. 청허계 가운데 정관 일선(靜觀一禪, 1533∼1608)의 정관파와 소요 태능(逍遙太能, 1562∼1649)의 소요파는 지리산과 호남 및 호서 지역을 주요 근거지로 했다.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의 사명파는 청허계의 대표 문파였지만 점차 편양파에 밀리면서 금강산 일대와 경상도에서 세력을 이어 갔다.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의 편양파는 묘향산 등 북방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8세기 이후 전국적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가장 큰 문파가 되었다. 부휴계는 선수의 적전 제자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이 남한산성 8도 도총섭으로서 전국적 위상을 가지면서 독자적 계파로 성장할 수 있었다. 부휴계는 17세기 초에 송광사(松廣寺)의 중창에 참여하면서 본거지로 삼았고, 호남을 주 무대로 하며 영남과 호서의 일부 사찰에도 영향력을 가졌다. 부휴계는 백암 성총(栢庵性聰, 1631∼1700) 때에 계파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는데, 바로 송광사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 유풍의 계승을 내세웠다. 또 송광사에는 부휴계의 정통 법맥을 이은 조사들의 탑이 부도전에 일렬로 세워졌다. 17세기 이후 불교계는 계파와 문파로 이어지며 법통을 통해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 문파와 법통의 연결고리는 바로 법맥의 전수였는데, 청허계와 부휴계 모두 고려 말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 ~1382)가 전해 온 중국 임제종의 정통 법맥을 계승한다는 태고법통을 공유했다. 『해동불조원류』(1764)에는 태고법통과 전법을 기준으로 청허계와 부휴계 여러 문파의 법맥 계보를 망라해 놓았다. 조선 후기에는 문파별로 주된 근거지가 확보되고 사제 간의 법맥 계승과 경제적 상속이 중요한 요인이 되면서 출가와 득도, 전법이 동일 계통의 사찰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 문파별로 특정 사찰과 지역을 세력권에 두게 되면서 상속과 추숭으로 상징되는 권리와 의무가 수반되었다. 법맥과 법통을 매개로 한 문파의 지속성, 인적·물적 전승과 재생산은 조선 후기 불교계의 존립과 재정 확충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 집필자 :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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