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이조불교 |
|---|---|
| 한자 | 李朝佛敎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근대 |
| 간행연도 | 1929년 |
| 간행처 | 일본 도쿄(東京) |
| 소장처 |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
1929년 일본인이 지은 조선시대 불교 연구서
1929년에 일본인 관학자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1878~1967)가 조선시대 불교를 연구하고 일본 도쿄에서 간행한 책이다.
다카하시는 조선총독부 종교・도서 조사 촉탁을 거쳐 경성제국대학 교수 및 혜화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해방 후 일본에서 조선학회 창설을 주도한 인물이다. 40여 년을 조선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사상 연구에 기여했지만, 식민지 관학자로서 그의 연구는 식민통치를 원활히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책은 다카하시가 유학, 불교, 특유한 종교에 관한 저술을 계획하고 시작한 ‘조선사상사대계’의 첫 번째 책으로서 그에 대한 서언이 들어 있지만, 이 외에 다른 책이 간행되지는 않았다.
그가 한국불교를 연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오대산 사고(史庫)의 조사를 위해 1912년에 월정사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때 월정사와 상원사에서 수행 정진하는 승려들의 일상을 목격하였다. 서울 인근의 승속들과는 달리 선과 강학에 전념하는 수많은 승려를 본 감상을 이 책의 서두에 붙인 ‘조선사상사대계(朝鮮思想史大系)’ 서언에서 밝히고 있다. “조선불교는 척불로 인해 사회적으로 종교로서의 기능을 박탈당하고 산속에 유폐되어 형기가 완전히 죽은 것 같지만, 이러한 심산의 거찰에 오면 아직 얼마간 그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라며 조선불교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해명하기 위해 돌아와서 조선불교사 연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1912년부터 십수 년을 연구한 결과가 1929년에 발표된 것이다.
그는 조선시대 불교를 3기로 나누어서 서술하였다. 제1기는 국초의 불교로 성종까지이고, 제2기는 연산군에서 인조까지, 제3기는 효종 이후이다. 서설에 따르면 이 구분은 교법(敎法)의 성쇠에 따른 분류이고, 만약 종지(宗旨) 및 전등(傳燈)으로 나눈다면 선조 이전과 이후로도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본문은 3기 구분과 함께 토지, 승직, 수계, 사찰에 대해 연구한 ‘이조불교 여설(餘說)’까지 포함하여 총 4편으로 구성되었다.
다카하시는 교법을 정책 및 세력에 연동시켜 이해하고자 했으며, 이것은 조선 사회의 제반 분야가 정치에 종속되어 왔다고 본 그의 조선사관이 투영된 것이었다. 특히 제3기를 쇠퇴의 전형이자 겨우 명맥만 유지한 몰락의 시기로 보고 있는데, 이는 식민지기에 통용되던 ‘조선후기 부정론’과 그에 대비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를 불교에 대입시켰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서문에서 조선불교가 중국불교의 한 분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이것은 조선의 유학과 중국 유학의 관계와 같은 것이라고 하여 한국 사상이 중국과 다른 독자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전제하였다. 이러한 인식이 조선불교가 유교 측에 밀려 비주류로 몰리고 생존을 걱정해야 할 만큼 몰락했다고 하는 쇠퇴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다.
이처럼 이 책은 식민사관에 의해 조선불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서술되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학문적 틀을 최초로 세우고, 한국사에서 불교전통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에 대한 입론을 세운 선구적인 업적이라는 점에서 연구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