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불교공보 |
|---|---|
| 한자 | 佛敎公報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박원찬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해방 공간기 |
| 간행연도 | 1949년 |
| 간행처 | 서울 |
해방 공간기에 불교 교단의 기관지로서 발행된 불교 신문
이 자료는 1949년에 조선불교조계종 중앙총무원에서 기관지로 간행한 불교 신문이다.
발행소는 불교공보사(佛敎公報社)이며, 발행 겸 인쇄인은 당시 중앙총무원장인 박원찬(朴圓讚), 편집인은 장용서(張龍瑞)이다. 박원찬은 해방 전에 통도사 주지와 경남3본산 종무협회장을 지내고 해방 후에 동국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한 뒤 총무원장이 된 인물이다. 장용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당시 경기교무원장 김정섭(金正燮)의 창간호 축사에서, 동아일보 같은 큰 신문의 편집 경험이 있는 장용서가 편집 주필로 와서 불교공보의 편집 기술도 우수할 것이라고 기뻐한 것으로 보아 언론 계통에 있었던 인물인 듯하다.
이 신문은 매호 4면의 지면(紙面)을 가지고 1949년 5월부터 월간으로 간행되었는데, 현재는 3호까지만 확인된다. 다만 제3호 기사 중에 「특별기사 예고」가 있는데, 교계의 숨은 큰 사업을 찾아 각향각처의 양로원과 고아원을 차례로 방문하여 특별 기사를 오는 9월부터 연재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기사로 미루어 보면 『불교공보』가 기관지였으니 적어도 더 지속해서 간행됐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동년 9월에 교단의 내분으로 박원찬이 총무원장직을 강제로 내려놓게 된 것을 감안하면, 잡지 발행이 중단됐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1~3호에서 가장 이슈가 된 기사를 간략히 짚어 보면, 1호는 석탄일을 맞아 본보(本報)를 창간했다는 것, 2호는 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가 정경과(政經科)를 분리하여 인가를 받았다는 것, 3호는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의 서거 소식 등이다. 특히 2호와 3호의 이슈는 아예 지면 한 면 이상을 할애하여 특집호처럼 꾸몄다. 그리고 연재물도 보이는데, 김동화의 「인생의 희구(希求)와 종교」, 안흥덕의 「불타의 부녀훈(婦女訓)」, 연구 논문으로 곽서순의 「불타의 위대성」 등이 있고, 매 호에 ‘동화(童話)’를 싣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해방 공간기 불교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교단 기관지로 발간된 『불교공보』는 이 시기 불교사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 집필자 : 김성연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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