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동양교보 |
|---|---|
| 한자 | 東洋敎報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정토종, 원흥사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대한제국 시대 |
| 간행연도 | 1902년 |
| 간행처 | 경성 |
구한말 한국에 진출했던 일본 불교 정토종이 발행한 신문
이 자료는 대한제국 시기에 일본 불교 정토종이 교세의 확장과 일본 불교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전파하기 위해 발행했던 월간 신문이다.
1898년 경성에 임시 교회소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일본 정토종의 한국 포교는 이듬해 가옥을 매수하고 확장 수리하여 1900년부터 개교원(開敎院) 시대를 열었다. 이때부터 한국인 포교를 위해 한국어가 가능했던 츠루야 카이류(鶴谷誡隆)를 개교원에 주석시켰는데, 그가 바로 1902년에 동양교보사 사장이 되어 『동양교보』를 발간한 인물이다. 『동양교보』는 매월 초 5일에 발행함을 원칙으로 했는데, 현재 확인되는 신문은 1902년 7월호인 제4호뿐이다. 일본 정토종 개교원이 지원했기에 처음 간행된 후 차질 없이 발행되었을 것으로 본다면, 1902년 4월에 창간호가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5호 이후로는 현재 전하지 않아 자세한 발행 사정은 알 수 없다.
제4호의 내용을 보면, 당시 정토종 관계자들이 조선 포교에서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배의론(排疑論)」이라는 사설에는 조선인들이 “일본 정토종 교회가 창설되어 불교를 유포하고 교원이 증가하고 매일 염불함을 의심하여” 반대로 원흥사(元興寺)를 설립했고, “일본이 상관하는 일은 즉시 의심하고 두려워한다.”라고 적고 있다. 잡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정토종 교회에 소임들은 동양교보 신문에 게재하는 사건은 당초부터 상관이 없사오니 회원들은 그리 아시고 우리들을 조금도 의심치 마시옵”이라는 광고를 실었다. 이처럼 일본 불교의 조선 진출에 대한 조선인의 의심과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잡지 전체에 흐르고 있다. 이 외에 당시 설립되었던 사사관리서(寺社管理署)나 원흥사의 동정에 대한 기사는 물론이고 청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등에서의 단편적인 소식도 전하고 있다.
조선에서 우리말로 간행된 최초의 신문인 『동양교보』는 1900년대 초반의 불교계 동향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그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매우 부족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토종의 기관지라는 점에서 한국 불교 최초의 신문(잡지)은 1910년에 간행된 『원종(圓宗)』으로 알려져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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