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금강저(잡지) |
|---|---|
| 한자 | 金剛杵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조선불교청년회, 이영재, 김태흡 |
| 판본 | 신연활자본 |
| 시대 | 일제 강점기 |
| 간행연도 | 1924~1943년 |
| 간행처 | 일본 도쿄(東京) |
일제 강점기 재일 불교 유학생 단체가 발간한 잡지
이 잡지는 일제 강점기에 재일 불교 유학생 단체가 발간한 기관지로서, 신교육을 받은 불교 청년들의 시대 인식과 불교학 및 문예 수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이다.
통권 제26호까지 발행된 것으로 확인되며, 1호부터 14호까지와 18호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다만 『금강저』 제21호에서 창간호부터의 총 목차를 확인할 수 있다. 창간호는 등사판으로, 2~14호는 석판으로, 15호부터는 활판으로 인쇄하여 출판되었다. 발행 주체는 재일본 불교 유학생들로 구성된 청년회였으며, 시기에 따라 재일본조선불교청년회[금강저사(金剛杵社), 1~18호], 조선불교청년총동맹 동경동맹(19~21호), 조선불교동경유학생회(22~25호), 조선불교동경학우회(26호) 등으로 명칭만 달랐다. 발행 기간은 1924년 5월부터 1943년 1월까지로 거의 20년에 걸쳐 있다. 1920년대에는 한 해에 2~4호 정도가 발간되었지만, 1930년 이후로는 한 해에 1호 또는 아예 발간되지 못한 해도 있었다. 이는 1930년대 이후 점차 전시 체제로 접어드는 시대 배경 탓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잡지의 발간 비용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불교 청년들은 사비를 털거나 방학을 이용해 국내 사찰들을 순행하며 비용을 모금하여 출판 경비를 충당해야만 했다.
잡지는 ‘권두언-시론-학술논설-문예작품-업경대-소식-편집자의 글’의 순서로 구성되었다. 내용에는 당대 불교 청년들의 교계 종무행정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으며, 유학생들의 학술 논문과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주요 필진으로는 이영재·김태흡·오관수·허영호·강유문·박윤진·이용조·이덕진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귀국 후에도 청년회 활동과 함께 중앙 교단 및 각 본산에서 주요한 역할들을 수행했다.
『금강저』는 근대 불교계의 신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일본 유학생들의 학술·문예잡지라는 점에서 불교사적 의미가 상당히 크다. 특히 유학생들의 학술논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유일한 창구였다는 점에서 불교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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