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금강산(잡지) |
|---|---|
| 한자 | 金剛山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최원허, 권상로, 금강산불교회 |
| 판본 | 신연활자본 |
| 시대 | 일제 강점기 |
| 간행연도 | 1935~1936년 |
| 간행처 | 경성 |
1935~1936년 금강산 표훈사가 발행한 월간 불교 잡지
이 문헌은 금강산의 불교를 널리 알릴 목적으로 표훈사가 발행한 월간 불교 잡지이다.
1935년 9월 창간호부터 이듬해 6월 제10호까지 발행되었다. 잡지의 편집 겸 발행자는 권상로였고, 발행소는 금강산사(金剛山社)로 경성에 있었다. 하지만 잡지의 발행 주체는 금강산 표훈사로, 주지 최원허 화상이 금강산의 본래면목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로 권상로에게 부탁한 것이다. 『금강산』은 불교계 중앙 기관지였던 『불교』가 1933년에 휴간된 상태에서, 경성에서 발간된 불교 잡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원허는 잡지 발간을 기회로 금강산을 알리는 일을 추진하기 위한 ‘금강산불교회’의 창립총회를 경성의 각황교당에서 개최했다. 창립총회에는 총 22인이 참석했고, 고문·회장·총무간사·서기 등의 임원을 선발했다. 이 자리에서 금강산과 관련한 전설을 다룬 김태흡 저술의 『보덕각시의 연기』·『법기보살의 연기』와 권상로가 주간한 『금강산』 잡지가 금강산불교회의 사업임이 보고되었다. 출판 성과가 먼저 나오고 금강산불교회를 결성한 것인데, 이를 보면 최원허는 오래전부터 김태흡·권상로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오며 금강산과 관련한 출판사업을 기획해 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금강산』의 주요 필진은 권상로, 최원허, 박한영, 김태흡, 김경주, 김영수, 박윤진, 에다 토시오(江田俊雄), 안진호 등이다. 이중 중앙불교전문학교 교강사진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반면 금강산 표훈사와 관련한 인물들의 투고는 주지 최원허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금강산과 관련한 주요 내용으로는 「금강관(金剛觀)」, 「보익(輔翊)의 금강」, 「산으로 본 금강경」, 「금강산 이야기-팔담(八潭)의 전설」 등 관련 전설과 불교 경전의 근거 및 불교적 해석을 다룬 학술적 성격의 글이 주목된다. 하지만 경성에서 주로 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할 뿐 금강산의 사찰이나 학인들은 거의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금강산’이라는 현장성을 생생하게 드러내어 홍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근대 금강산은 철도가 놓이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한국의 고유 신앙과 불교신앙의 성지라기보다는 훌륭한 관광지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금강산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한편으로는 조선시대에 위축되었던 금강산 불교가 되살아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근대 관광의 시대를 맞아 사찰을 보수하고 홍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금강산』 잡지도 이를 계기로 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금강산』은 일제 강점기에 금강산을 주제로 발간된 유일한 잡지라는 점에서 불교사적 의미가 크다. 당대 최고의 불교 지식인들이 쓴 학술 논설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라는 전통에서 금강산을 표상화하려 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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