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석가여래행적송촬요 |
|---|---|
| 한자 | 釋迦如來行迹頌撮要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부암 운묵, 석가여래행적송, 천태사교의, 천태학, 오시팔교, 말법 |
| 판본 | 목판본 |
| 시대 | 조선 중기 |
| 간행연도 | 1571년(선조 4) |
| 간행처 | 미상 |
조선 중기 저자 미상의 『석가여래행적송』의 핵심을 가려 뽑아 펴낸 주석서
조선 중기 저자를 알 수 없지만, 고려 후기 부암 운묵(浮庵雲默, ?~?)의 『석가여래행적송』에서 핵심적인 내용을 가려 뽑아서 펴낸 주석서이다. 이 책은 1529년(중종 24)에 전남 광양 백운산 만수암(萬壽庵)에서 간행한 목판본을 저본으로 『한국불교전서』에 수록하였다.
이 책은 1권 1책으로, 전체 840구 210게송(偈頌)으로 상·하권의 구분을 없애고 『석가여래행적송』의 핵심을 정리하여 구성하였다. 이 책의 ‘촬요(撮要)’는 『한국불교전서』 편집자가 추가로 제목을 붙였다. 운묵은 『석가여래행적송』에서 776구에 이르는 194수의 게송으로 석가모니불의 일생과 불교가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유통된 내력 등을 정리하였다. 이후에 독송의 번잡함을 피하고 핵심만을 쉽게 전하고자 주석을 생략하고 본송(本頌)만을 발췌해 엮었다.
내용은 『석가여래행적송』의 본송을 옮겼으므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역사, 불경의 번역과 경전의 간행, 각 시대의 사찰과 승려의 수, 중국 역대 왕의 불교 신봉과 흥성, 억압과 법난 등이 차례로 제시되었다.
이 책에서 일부 게송 아래에 주석을 붙였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어하는 점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즉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님의 성도 부분에서 깨달으신 법의 내용을 밝히고, 당시 상황을 기술하였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때를 주(周) 목왕(穆王) 즉위 3년 계미(癸未, BCE 974) 2월 8일이라 하였다. 부처님의 중생 구제를 향한 결심의 계기를 천태의 오시팔교의 입장에서 자세히 밝혔으며, 부처님의 열반은 목왕(穆王) 52년 임신(壬申, BCE 925) 2월 15일이고 당시 하늘에 구름이 뒤덮이고 서방에 하얀 무지개가 떠서 밤이 되도록 사라지지 않자, 왕이 괴이하게 여겨 태사에게 물으니 서방의 대성인이 돌아가신 징조라고 대답했다고 하였다. 아울러 조사들의 전등(傳燈), 중국에 처음 불법이 전해진 상황과 백마사의 건립 부분은 『파사론(破邪論)』을 들어 자세히 설명하였고, 경전의 번역과 역경된 불경이 6천여 축(軸)이라는 대목에서는 시대별로 역경된 경전의 수와 사찰과 승려의 수까지 자세하게 밝혔다. 중국의 법난과 관련된 154번째 게송 다음에는 『석가여래행적송』의 주석을 그대로 옮겨서 인용한 부분이 눈에 띈다. 역대로 법을 지켜 발복을 한 일과 법난과 훼불의 과보와 재앙에 대해서 경고한 부분이다. 이를 보면, 당시 억불숭유의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 대한 시각을 담아서 이 책의 찬자가 불교인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불교 교단의 현실을 살펴볼 수 있으며, 불교사에 대한 관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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