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삼봉집 |
|---|---|
| 한자 | 三峰集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화악 지탁, 청허 휴정, 석왕사, 유점사 |
| 판본 | 목활자본 |
| 시대 | 조선 후기 |
| 간행연도 | 1869년(고종 6) |
| 간행처 | 경기도 양주 천마산 보광사 |
| 소장처 | 동국대 중앙도서관, 개인소장 |
조선 후기 지탁의 시와 글을 엮은 시문집
조선 후기 화악 지탁(華嶽知濯, 1750~1839)의 시와 글을 엮은 시문집이다. 혜소(慧昭)의 발문에 지탁이 열반한 후 제자 권우(勸愚)가 시와 글을 모아 『풍사록(風使錄)』 2권으로 엮었는데, 어떤 선비가 빌려 간 후 사라져 버렸고, 문인들이 다시 시와 글을 모아서 간행했다고 하였다. 이 책은 1869년(고종 6) 경기도 양주 천마산 보광사(寶光寺)에서 간행한 목활자본을 저본으로 『한국불교전서』에 수록하였다.
이 책은 1권으로 1869년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쓴 서문이 있고, 문(1) 3편, 시 51편, 문(2) 35편에, 이유원의 「영찬(影讚)」,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법상찬(法像讃)」, 취암(翠碧) 이도현(李道玄)의 「행장(行狀)」, 혜소의 「발문」, 그리고 부록으로 5편의 글이 실려 있다. 문(1)은 「행각록(行脚錄)」 등이 있는데, 문(2)와 나눈 것은 시기상 구별한 것으로 보인다. 시문도 문체로 나눈 것이 아니라 시간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행각록」과 「백두산기(白頭山記)」 사이에 있는 시문은 별도의 작품으로 나누었지만, 내용을 보면, 모두 「행각록」에 속하는 내용들이다. 「천불산록(千佛山錄)」에 이은 시 「천불산 개심사 용담 홍유 대사에게 주다-짧은 서문과 함께[贈千佛山開心寺龍潭弘裕大師-并小序]」, 「천불산 필경 대사에게 주다-서문과 함께[贈千佛山必慶大師-并序]」도 같은 형식이다. 이어서 석왕사(釋王寺) 내원암(內院庵)・송광사(松廣寺) 등에서 만난 스님들과 나눈 시가 있고, 특히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다가 만난 스님들과 나눈 시들이 있다. 문(2)는 「인물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해설[不遇人說]」과 「금강산 유점사 설선당 중건기(金剛山楡岾寺說禪堂重建記)」를 비롯한 금강산 관련 여러 사찰의 불사와 관련한 여러 기문, 상량문, 중수기가 있어서 당시의 불사 현황도 알 수 있다. 「조상경 증정서(造像經證正序)」와 「조상경 고증발(造像經考證跋)」, 「천경집발(天鏡集跋)」을 통해서는 여러 문헌의 교정과 간행에 참여한 행적을 알 수 있다. 「화담에게 답하면서 쓰다[答華潭書]」를 비롯한 서간문 13편이 실려 있다.
부록 5편은 이유원이 쓴 지탁의 제자 화담 경화(華潭敬和, 1786~1848)의 「화담 대사 부도비명(華潭大師浮屠碑銘)」, 「영찬」과 김정희, 혜소의 「영찬」과 「행장」이 있다. 취벽(翠碧) 이도현(李道玄)이 지은 「행장」에서 지탁은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으로부터 법을 이은 8세손이며, 전법 제자가 100여 명에 이르는데, 화담 경화가 상수제자(上首弟子)라고 하였다. 대사의 법랍은 48년, 학인을 제접(提接)하고 교화한 지 34년, 장좌불와를 한 지 29년이었다. 『화엄경』을 55회 강하고, 『법화』·『열반』 등 수많은 경전을 강론하였고, 『팔양경(八陽經)』과 『염송』 1,700공안·『화엄』·『법화』·『열반경』 등에 주석을 단, 선교를 겸비한 분이라고 존경의 마음을 담았다. 권말에 수법(受法), 수선(受禪) 제자와 원근문정(遠近門庭) 문인의 이름을 함께 실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휴정 법맥의 전승과 활동을 살펴볼 수 있으며, 금강산과 관련한 다양한 불사의 상황, 선학과 교학의 겸수 등을 알 수 있는 문헌이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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