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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로행적

한글삼로행적
한자三老行蹟
유형문헌
키워드휴정, 벽송 지엄, 부용 영관, 경성 일선, 고승전, 해동고승전
판본목판본
간행연도미상
간행처미상
조선 중기 휴정이 지엄, 영관, 일선 등 세 선사의 행장을 담아 엮은 역사책
조선 중기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이 벽송 지엄(碧松智嚴, 1464∼1534),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 경성 일선(敬聖一禪, 1488∼1568) 등 세 선사의 행장을 기록하고 각각 진찬(眞贊)을 붙여 엮은 역사책이다. 발행 사항 미상의 목판본을 저본으로 『한국불교전서』에 수록하였다. 이 책은 1책으로 지엄·영관·일선 등 세 선사의 행장과 권말에 동계 경일(東溪敬一, 1636∼1695)의 「경성당 휴옹의 행록 뒤에 쓴 발문[慶聖堂休翁行錄後跋]」이 수록되어 있다. 「벽송당대사 행적(碧松堂大師行蹟)」은 법맥으로 보면 휴정의 조부에 해당하는 지엄의 행장이다. 그는 1491년(성종 22) 28세에 북방을 침입한 여진족을 물리치는 데 참여하여 전공을 세웠지만, 허명을 숭상한 것이라 떨치고 계룡산 상초암(上草庵)의 조징(祖澄)대사를 뵙고 출가하였다. 1508년(중종 3) 가을에 금강산 묘길상(妙吉祥)에 들어가서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을 보다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화두를 참구하여 깨침을 얻고, 『고봉원묘선사어록(高峰原妙禪師語錄)』을 통해 알음알이[知解]를 모두 깨끗이 씻어 버렸다. 그래서 평생 고봉과 대혜의 가풍을 따랐다. 오대산, 백운산, 능가산, 지리산 등을 두루 다니며 두타행에 철저하였다. 1534년(중종 29) 71세 때 수국암(壽國庵)에서 『법화경』을 강의하다가 「방편품」에 이르러 법어를 내리고는 문을 닫고서 조용히 입적하였다. 의신동(義神洞) 남쪽 기슭에 사리탑을 봉안하였다. 「부용당선사 행적(芙蓉堂先師行蹟)」은 휴정의 스승인 영관의 행장이다. 1497년(연산군 3) 13세 때 덕이산(德異山)으로 들어가서 고행선자(苦行禪子)에게 3년간 가르침을 받고 삭발하였다. 1501년(연산군 7) 17세에 신총법사(信聰法師)를 뵙고 교학을 탐구하였고, 위봉대사(威鳳大師)를 참방하여 선법을 배웠다. 무주 구천동(九泉洞)에 들어가 9년 동안 장좌불와하였다. 1530년(중종 25) 47세 때 두류산으로 가서 벽송의 문하에서 수행하였다. 1571년(선조 4)에 입적하여 연곡사(鳶谷寺)에 부도를 세웠다. 「경성당선사 행적(敬聖堂禪師行蹟)」은 법맥으로 휴정의 숙부인 일선의 행장이다. 13세 때 경북 월성의 단석산에 들어가 해산(海山) 스님을 모시고 정진한 지 3년 만에 삭발하였다. 24세 때는 묘향산 문수암(文殊庵)에서 수행하였다. 여러 곳을 만행하다가 지리산에서 지엄을 친견하고 조사 관문의 활구(活句)를 참구하라는 가르침을 받아 정진하여 깨침을 얻었다. 선비들과 어울렸다가 무고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무죄가 인정된 후, 1544년(중종 39) 57세 때 묘향산에 들어가 9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묘향산 보현사 관음전에서 널리 설법하였다. 1568년(선조 1)에 입적하였다. 이 책은 조선시대 선종사와 휴정의 법맥과 계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문헌이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관련자료

  • 청허 휴정의 전기문학 연구-삼로행적과 삼몽록의 서술방식을 중심으로
    학술논문 김승호 | 새국어교육 | 88 | 서울: 한국국어교육학회 | 2011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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