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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영응기

한글사리영응기
한자舍利靈應記
유형문헌
키워드金守溫
판본목활자본
시대조선 초기
간행연도1449년(세종 31)
소장처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조선 전기 김수온이 세종의 명으로 모신 부처님 사리의 영험을 기록한 문헌
조선 전기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이 세종의 명으로 모신 부처님 사리의 영험을 기록한 문헌이다. 1449년(세종 31)에 간행한 동국대학교 소장 목활자본을 저본으로 『한국불교전서』에 수록하였다. 1449년 세종은 선왕 태종이 문소전(文昭殿) 옆에 불당(佛堂)을 세워 열성(列聖)의 명복을 빌었으나, 당시 불당을 경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선왕의 원(願)을 저버린 것이라 한탄하며 문소전 옆에 새로 불당을 짓도록 하고 안평대군(安平大君) 용(瑢)에게 감독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11월 20일 준공하고 삼존불을 모셨으며, 대자암(大慈庵) 주지 신미(信眉, ?~?)와 김수온(金守溫)에게 「삼불예참문(三佛禮懺文)」을 짓게 하고, 여러 악장(樂章)도 만들었다. 이때 또 수양대군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지어 올렸다. 12월 6일 낙성식을 베풀었는데, 이때 세종이 향을 바치며, “나의 효성이 능히 부처님을 감동시켜 대중에게 감응을 보이기를 지성으로 기원한다.”라고 하였고, 그때 불전에서 방광하고 사리탑 앞에서 사리 두 개가 나타났는데, 광채가 찬란하여 모인 대중들이 왕과 함께 크게 기뻐하고 찬탄하였다. 본문의 끝에 「승의랑수병조정랑 신 김수온 근기(承義郞守兵曹正郞臣金守溫勤記)」라는 기문과 함께 ‘정근입장인명(精勤入場人名)’에 당시 사건을 목도한 신미를 비롯한 스님들과 효령・수양・안평대군 등 대군, 대신 등 관료, 동참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특이한 부분은 당시의 한글 이름도 50여 명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조선 전기 왕실과 불교 및 사리신앙과 관련한 일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한글로 표기된 이름이 50여 개가 있어서 조선 초 인명 표기와 서지학 연구에도 귀중한 문헌이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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