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이통현 |
|---|---|
| 한자 | 李通玄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대방광불신화엄경합론, 약석신화엄경수행차제결의론, 신화엄경론, 해미현지성비십명론, 지눌 |
| 시대 | 당(唐) 초기 |
| 출생 | 635? |
| 입적 | 730? |
당나라 초기에 『신화엄경론』으로 『화엄경』에 대한 독자적 해석을 제시한 거사
당나라 초기에 활동한 거사(居士)로,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 등 화엄(華嚴) 종조(宗祖)로 추대되는 인물들과는 다른 『화엄경(華嚴經)』에 대한 독자적 해석을 제시한 인물이다.
이통현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 자료는 다수 남아 있으나 각각 사료의 기술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 정확한 인적 사항과 생몰 연도를 알기는 어렵다. 종합해 보면 7세기 중반에서 8세기 중반, 화엄종 3조인 현수 법장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통현의 출신에 관해서는 크게 당나라 황족 혈통과 창주(滄洲: 지금의 허베이성 창저우) 사람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화엄경결의론서(華嚴經決疑論序)」에서는 이통현을 북경 사람이며 황족 혈통이라고 하고, 『송고승전(宋高僧傳)』에서는 그를 태원(太原) 동북(東北)에 있는 사람으로 당나라 황실 혈통이지만 어느 왕원(王院)의 자손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렇듯 불분명한 행적 때문에 「결의론후기(決疑論後記)」에서도 “그 이상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아마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화신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평한다. 젊은 시절 역(易)에 깊은 관심을 두었다가 40세가 넘어서야 『화엄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40세 이후부터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의 집필을 시작한 말년까지의 행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우현(盂縣) 대현촌(大賢村) 고산노(高山奴)의 집에 머무르며 『신화엄경론』을 집필하였는데, 식사로 대추 열 알과 잣나무 잎으로 만든 떡을 먹어 당시 세간에서 그를 조백대사(棗白大士)로 불렀다고 한다. 이 밖에도 『불조통기(佛祖統紀)』 등에 신이한 행적이 전해지고 있다.
여러 저술을 남겼다고 전해지나 현존하는 저술은 80권본 『화엄경』을 각 품마다 종지에 따라 문구를 풀이한 주석서이자 대표적 저술인 『신화엄경론』 40권, 『약석신화엄경수행차제결의론(略釋新華嚴經修行次第決疑論)』 4권, 『해미현지성비십명론(解迷顯智成悲十明論)』 1권, 『대방광불화엄경중권권대의약서(大方廣佛華嚴經中卷卷大意略叙)』 1권뿐이다. 그의 제자이자 그의 저술을 유포한 인물로 광초(廣超)와 도광(道光)의 이름이 전하는데, 이들 또한 행적이 불분명하다.
이통현 화엄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수행[行]을 『화엄경』의 주제로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통현은 ‘범부가 실제로 깨달을 수 있다’며 수행을 핵심으로 삼은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을 정종분(正宗分: 경전의 본론)으로 분류하였다. 이는 이통현이 『화엄경』을 범부 성불의 경전으로 파악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통현의 화엄 교학을 실천론적인 면모가 강한 화엄, 일명 실천 화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부처님의 미간에서 발하는 백호상(白毫相)은 다른 모든 경전에서도 발견되지만 『화엄경』은 이 측면에서도 차별된 의미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방광별(放光別)이라 하는데, 이통현 특유의 설이다.
이통현의 화엄 사상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지만, 후대에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우리나라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신화엄경론』은 의천(義天, 1055~1101)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에도 입장(入藏)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판각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유통되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 불교사에서 이통현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신라 승려 순지(順之)의 「삼편성불편(三遍成佛篇)」에서이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건 고려 승려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이다. 지눌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등 자신의 저술에서 이통현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
그러므로 이통현이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들 모두가 문수·보현 두 보살을 통해 부처의 보리를 이루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문수와 보현은 부처님들의 큰아들과 작은아들이다” 하였으니, 이로써 세 사람이 서로 주인과 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보기 +
관련자료
-
-
송고승전(宋高僧傳)
-
약석신화엄경수행차제결의론(略釋新華嚴經修行次第決疑論)고서 상세정보
더보기 +
-
중국화엄사상
-
『신화엄경론』에 나타난 이통현의 『화엄경』 해석의 특징
-
李通玄と普照國師知訥; 「華嚴論節要」硏究への一視點
-
李通玄의 華嚴思想 硏究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