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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택 신회

한글하택신회
한자荷澤神會
유형인물
키워드남돈북점, 남종선, 북종선, 하택종
시대당(唐) 초기
출생684
입적758
하택(荷澤)
시호진종대사(眞宗大師)
주요주석처낙양(洛陽) 하택사(荷澤寺)
탑소재지낙양(洛陽) 용문(龍門) 보응사(寶應寺) 터
당나라 초기 하택종의 개조이자 북종선을 비판하고 남종선을 선양한 선사
당나라 초기에 활동한 승려로 하택종(荷澤宗)의 개조이자 북종선(北宗禪)을 비판한 인물이다. 선종 6대 조사로서의 혜능(慧能, 638~713)의 위상과 정통성을 부각하고 그 선 사상의 특성을 분명하게 정립하여 남종선(南宗禪)의 진면목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신회의 속성은 고(高)씨이며, 양양(襄陽: 지금의 후베이성 샹양)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오경(五經)·노장(老莊)·사서(史書) 등 유·불·도 3교를 공부하였으며, 여러 경전을 외우는 일에 능했다. 일설에 따르면 국창사(國昌寺) 호원(顥元) 문하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3년간 신수(神秀, ?~706)의 문하에 있다가 혜능을 친견하고 그에게 사사(師事)하였다. 혜능 입적 후에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돌아다니며 공부하다가 720년(개원 8)에 칙명을 받아 남양(南陽) 용흥사(龍興寺)에 머무르며 선법을 크게 선양하였다. 이때부터 남양화상(和尙)이라 불렸다. 732년(개원 20) 무렵에 낙양(洛陽: 지금의 허난성 뤄양)으로 가 활대(滑臺) 대운사(大雲寺)에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고 숭원(崇遠)과 대론하며 신수 문하의 북종을 비판하였다. 신회는 자신의 스승인 혜능이야말로 달마(達磨, Bodhidharma)의 직계이자 선종의 정통을 이은 후계자인 6조라고 주장하였다. 홍인(弘忍, 601~674)에서 혜능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돈오(頓悟)를 설하며 남천축(南天竺) 달마의 전통을 이은 돈문(頓門)의 ‘남종’이고, 당시 선종의 주류 세력이던 신수 계열의 선법은 방계로서 서서히 번뇌를 제거해 가는 점오(漸悟)를 설하는 점문(漸門)의 ‘북종’이라고 비판하였다.(南頓北漸) 745년(천보 4)부터 낙양 하택사(荷澤寺)에 주석하며 선법을 선양하다가, 753년(천보 12) 어사(御史) 노혁(盧奕)의 무고로 익양군(弋陽郡)·무당군(武當郡) 등지로 유배를 가기도 하였다. 755년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성대한 수계법회를 개최하고 향수전(香水錢)을 팔아 군수(軍需)에 충당하였다. 난으로 인해 북종선의 지지층이 약화되고 있던 상황에 이러한 신회의 활동은 남돈북점이라는 그의 주장이 널리 퍼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 공로로 이듬해인 756년(지덕 원년)에 숙종(肅宗)이 대사를 불러 공양을 올리고 하택사에 선우(禪宇)를 지어 주석해 달라 청하였다. 이로부터 하택대사라 불렸다. 758년(건원 원년)에 형주(荊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세수 75세, 법랍(法臘) 54세로 입적하였다. 입적한 지 5년 후인 763년(보응 2)에 낙양 용문(龍門)에 탑이 건립되고, 칙에 따라 그곳에 보응사(寶膺寺)를 세웠다. 770년(대력 5)에 대종(代宗, 재위 762~779)이 ‘진종대사(眞宗大師)’라는 시호와 ‘반야대사지당(般若大師之堂)’이라는 당호(堂號)를 하사하였고, 772년(대력 7)에 다시 ‘반야대사지탑’이라는 탑호를 내렸다. 796년(정원 12)에는 덕종(德宗, 재위 779~805)이 ‘선종 제7조’라는 칭호를 하사하고 신룡사(神龍寺)에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신회의 문하로는 무명(無名)·법여(法如) 등이 있으며, 이들을 하택종이라 한다. 주요 저술로는 『남양화상돈교해설선문직료성단어(南陽和尙頓敎解說禪門直了性壇語)』·『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菩提達摩南宗定是非論)』·『돈오무생반야송(頓悟無生般若頌)』·『남양화상문답잡징의(南陽和尙問答雜徵義)』 등이 있는데, 모두 20세기 초반 둔황에서 발견된 문서들이다. 그중 첫 번째 저술에는 혜능의 어록인 『육조단경(六祖壇經)』의 근본과 유사한 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육조단경』에서 설하고 있는 혜능의 무념(無念) 선법은 그 선 사상의 요지뿐만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 신회의 저술과 일치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따라서 『육조단경』도 그에 의하여 변경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선종사에서 신회를 보는 시각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신회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특히 북송 이후부터 선법의 기본 방향이 변화함에 따라 부정적인 평가로 기울어지고 만다. 이를 상징하는 말이 『육조단경』에서 혜능이 신회를 지해종도(知解宗徒)라 비판한 것인데, 후인들이 『육조단경』의 첨삭을 거듭하면서 당시 주류 선법의 관점에서 혜능에게 가탁한 결과이다. 중국 선종사에서 그는 혜능을 선종 제6조이자 선종의 상징적 인물로 정립시켰고, 본체보다 작용을 중심으로 변화하며 평상심의 도를 강조하는 후대 선법의 큰 흐름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생사(生死)를 버리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이 돈오다.”라고 하거나 “지(知)라는 한 글자는 온갖 미묘한 이치가 출입하는 문이다.(知之一字衆妙之門)”라고 하는 등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회는 구체적 현실의 범주와 돈오를 연결하고, 입정(入定) 중심의 좌선을 강렬하게 비판하면서 작용과 혜(慧)로서의 지(知)를 부각하였다. 이는 『육조단경』의 좌선 비판이나 기타 선법과 대부분 일치한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 이때 신회란 어린 스님이 나서서 대답하기를 ‘신회는 이 물건을 알고 있습니다’ 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사미야, 안다 하면 또 무슨 물건이라 말할 것인가?’ 하셨느니라. 신회가 다시 말하기를 ‘이는 부처님들의 본원이며, 또 신회의 불성입니다’ 하니, 6조께서 주장자를 찾아 사미를 때리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이름도 자도 없다 했거늘, 어찌하여 본원 불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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