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카니슈카 |
|---|---|
| 산스크리트어 | Kaniṣk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쿠샨왕조, 아쉬바고샤 |
고대 인도 쿠샨 왕조의 왕
1세기에서 2세기 무렵 월지(月支)로도 알려진 인도-이란계 쿠샨(Kuṣāṇa, 月氏國, 貴霜)왕조의 왕이다. 북인도 거의 전역과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정복하였으며, 불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한역 경전에는 가니색가(迦膩色迦)·계니가(罽膩迦) 등으로 나온다.
쿠샨 왕조는 아랄해에서 벵골만까지 점령하며 전성기를 누렸던 남아시아 제국 가운데 하나였다. 쿠샨족은 원래 중앙아시아 동부에 살던 인도-유럽 유목민 연합인 월지족의 한 분파로 시작되었으며, 20~30년경 흉노족에게 서쪽으로 쫓겨나면서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에 정착하였다. 이후 쿠샨 제국은 무역의 허브로서 다양한 문화와 접점을 만들면서 복합적인 종교문화를 형성하였다. 당시 주로 조로아스터교인으로 구성된 쿠샨족은 그리스와 불교의 종교적 요소를 자신들의 종교문화에 접목하여 다양한 형태의 쿠샨 동전을 주조하였으며, 그리스의 신 헬리오스(Helios)와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 미트라(Mithra)를 비롯하여 불교의 교조인 붓다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교의 신들을 동전에 새겨 유포하였다.
카니슈카왕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대부분 중국에서 작성된 불교 저술에서 발견된다. 정확한 재위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128~151년, 120~144년, 78~144년 등 여러 학설이 존재하지만, 그중 78~144년 설은 고대 인도 역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샤카력(曆)이라 부르는 해당 역법은 카니슈카의 즉위 추정 연대인 78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는 푸루샤푸라(Puruṣapura: 현재 파키스탄의 페샤와르)를 수도로 삼아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네팔에 이르는 북인도 전역과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이란 지역에 미치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면서 제2의 아쇼카왕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카니슈카는 당시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in)를 후원한 것으로 유명한데, 구법승 법현(法顯, 337~422)과 현장(玄奘, 602~664) 모두 그가 건립한 사리탑을 언급하였다.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건타라국(健馱邏國: 간다라) 서쪽으로 걸어서 3일가량 걸리는 장소에 카니슈카왕이 세운 승원인 가니색가가람(迦膩色迦伽藍)이 있음을 언급하고, 협(脅, Pārśva)존자·세우(世友, Vasumitra) 등 500명의 아라한을 모아 제4차 결집으로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을 엮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그는 불교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불소행찬(佛所行鑽, Buddhacarita)』과 『사운다라난다(Saundarananda)』를 저술한 마명(馬鳴, Aśvaghoṣa)을 후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간다라를 중심으로 한 불교미술의 발전과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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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께서 이 나무 아래에서 남쪽을 향하여 앉으신 뒤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 4백 년이 지난 뒤 어떤 왕이 있어 세상을 다스릴 것이니, 이름을 가니색가라고 할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솔도파를 세우리니, 내 몸의 모든 뼈와 살과 사리들의 대부분이 그 안에 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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