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암베드카르 |
|---|---|
| 영문 | Ambedkar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신불교, 네오부디즘, 붓다와 그의 법, 불가촉천민, 달리트, 카스트제도 |
근대 인도의 신불교운동을 이끈 사상가이자 사회개혁가, 정치가
인도의 법률가이자 사상가, 정치가이다. 불가촉천민 출신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현대 인도 헌법의 기초를 다졌으며, 신불교(Neo-Buddhism)운동을 이끌고 불교의 평등정신에 근거하여 카스트제도 철폐에 앞장선 사회개혁가이다.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남부 라트나기리(Ratnagiri)의 작은 마을 암바바데(Ambavade)의 불가촉천민 공동체인 마하르(Mahar) 가문에서 태어났다. 고대 인도에서 이어져 온 뿌리 깊은 계급제도는 당시 인도 사회에서 최하층인 불가촉천민 ‘달리트(Dalit: 억압받는 자들)’들에게 가혹한 현실로 작용하였다. 법적으로는 ‘지정카스트(Scheduled Caste)’로도 불리는 불가촉천민은 전통적으로 오물과 쓰레기 처리업, 세탁업, 화장터 종사자, 가축 도살업, 가죽 세공업 등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을 경계 밖에서 거주해야 하며 마을 공동우물을 사용할 수도 없었고, 힌두 사원 출입과 도로 사용에도 제한이 있었으며, 극단적으로는 폭행이나 강간 등 인권침해의 대상이 되어도 공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암베드카르 또한 어린 시절 모든 불가촉천민이 겪어야 했던 비인간적 대우를 받고 자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암베드카르는 달리트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외국에 유학하여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었다. 1907년 엘핀스턴 대학 시험에 합격하여 축하받는 자리에서 그는 교사가 선물로 준 『고타마 붓다의 생애』라는 책으로 불교를 접하였다. 이후 1913년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으로 유학하여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런던 유학 생활을 거쳐 인도로 돌아와 군 서기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그러나 지속적인 차별대우로 사직하고, 1918년 뭄바이의 시드넘 대학 정치경제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마찬가지 이유로 사직한 후 런던으로 떠나 법률 공부를 이어 가게 된다. 이후 런던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와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독일 본(Bonn) 대학에서 경제학 연구를 하다가 1923년 인도로 돌아오게 된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암베드카르는 힌두 전통사회의 계급 질서에 반기를 들고 불가촉천민의 처우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주목할 만한 활동으로는 1927년 콜라바 지역 회의를 주재하면서 불가촉천민의 물 공급을 위해 벌인 ‘초다르 물탱크 시위’와 ‘『마누법전』 불사르기’이다. 1930년 이후에는 여성·천민의 교육과 참정권 부여 등 달리트의 권익 증진과 분리선거 등을 주장하였고, 1936년 독립노동당(Independent Labour Party)을 창설하여 지정석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영국 식민통치 기간에 인도 독립, 달리트 문제와 관련하여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와 함께 활동하면서도 견해 차이로 대립각을 세운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한편, 1935년 암베드카르는 ‘욜라(Yeola) 선언’을 통해 스스로 힌두교인임을 포기하였고, 나아가 자유·평등·우애의 원칙이 붓다의 가르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붓다가 힌두 사회의 불합리한 체제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인물이라는 점과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가르친 점, 핍박받는 하층민들을 그의 법(Dhamma)으로 수용하면서 존경받는 비구가 되게 했다는 점, 붓다의 승가에 차별이 없고 모든 구성원이 우애적 관계에 있었다는 점은 암베드카르가 붓다를 자유·평등·우애의 모범 인물로 여기게 된 이유였다. 그러나 욜라 선언 이후 실질적으로 불교로 개종한 때는 21년이 흐른 1956년이다. 암베드카르는 인도 마하라슈트라주(州) 나그푸르(Nagpur)에 있는 딕샤부미(Diksha Bhumi)에서 40만여 명에 달하는 추종자들이 모인 가운데 불교로의 집단 개종식과 함께 개종 연설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삼보(三寶)에 대한 귀의와 오계(五戒)의 서약을 하고, 나아가 직접 준비한 22가지 서약을 선포하였다. 여기에는 힌두 신들을 믿지 않고, 그들에게 절하지 않으며, 붓다를 비슈누(Viṣṇu) 신의 화신으로 여기지 않을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암베드카르의 힌두교도 포기 선언 이후 여러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종교로 개종할 것을 권장하였지만, 그는 일정 기간의 탐색 과정을 거친 후 불교야말로 불가촉천민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여기고 최종적으로 불교를 선택하였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불교에 대한 그의 사상적 탐구와 사색은 『붓다와 그의 법(The Buddha and His Dhamma)』(1957)으로 암베드카르 사후 출간되었다.
암베드카르의 불교 사상을 기존 불교와 구별하여 흔히 ‘신불교(新佛敎)’ 또는 ‘신승(新乘, navayāna)’이라고 부른다. 이 명칭은 그가 주창하는 불교의 목적이 해탈에 있다기보다는 정치·사회적 개혁 혹은 사회운동에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불교에 대한 강력한 주관적 해석으로 암베드카르주의(Ambedkarism), 암베드카르승(Ambedkaryāna), 빔승(Bhim-yāna) 등 다소 비판적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암베드카르의 신불교는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과 유연한 재해석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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