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아쇼카

한글아쇼카
산스크리트어Aśoka
팔리어Asoka
유형용어
키워드아육왕, 마우리아왕조, 석주, 전륜성왕, 불사리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
기원전 4~3세기 무렵 북인도에서 흥기한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재위 기원전 273~232년 추정)이다. ‘아쇼카’를 음역하여 아육왕(阿育王)으로도 부르며, ‘아쇼카(aśoka: 근심이 없음)’의 뜻을 살려 무우왕(無憂王)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아쇼카는 인도 남부를 제외한 인도 대륙의 거의 전 지역뿐 아니라 북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인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였다. 또한 인도 전역에 석주를 세우고 자신의 업적과 칙령을 반포하여 사회적·정치적으로도 통일을 도모하였다. 왕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불교 문헌으로는 『아육왕전(阿育王傳)』(306년 한역), 『아육왕경(阿育王經)』(512년 한역)으로 대표되는 북방 전승과, 팔리어로 작성된 스리랑카 역사서 『디파방사(Dīpavaṃsa)』와 『마하방사(Mahāvaṃsa)』 등에 수록된 남방 전승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북전 아쇼카왕 전설은 야무나강(江) 유역 마투라 지역에서 유행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in) 부파들이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경에 정리한 것이며, 현재 전하는 것은 서북 인도에서 변형이 가해져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3세기 아쇼카가 인도를 통일하기 전까지 인도는 중소 국가들이 난립한 상황이었다. 북부 대부분의 국가에는 브라마니즘(Brahmanism: 바라문 전통)과 슈라마니즘(Śramanism: 사문 전통) 종교들이 혼재했고, 뛰어난 스승의 등장과 왕의 후원 등으로 다양한 세력의 흥망이 역동적으로 진행되었다. 마우리아왕조 제1대 왕이자 아쇼카왕의 조부인 찬드라굽타(Candragupta Maurya, 재위 기원전 324~297년 추정)가 자이나교의 가르침을 섬긴 반면, 아쇼카는 불교의 가르침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불교에 귀의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정복전쟁으로 남부까지 진출한 끝에 현 인도 동부 오디샤(Odisha)주에 속하는 칼링가(Kaliṅga)를 정복한 후, 전쟁이 아니라 법(dharma)에 의한 정복으로 노선을 바꾸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역 『아육왕전』에서는 악인 기리(耆梨, Girika)를 고용하여 끔찍한 감옥을 지었다가 한 비구가 이곳에서 7일간 명상에 들어 아라한과를 얻는 것을 보고 존경심을 내었다고 전하며, 남방 전승에서는 니그로다(Nigrodha)라는 어린 사미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 위엄에 존경과 환희를 느껴 법을 청하고 불교에 귀의했다고 전한다. 이후 그는 불교를 옹호하고 널리 확산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는데, 산치(Sanchi) 대탑을 비롯하여 불탑을 건립하는 불사(佛事)와 불교 성지 순례, 승단에 대한 제도적 후원, 석주의 비문을 통한 불교의 가르침(교리) 전파, 각 지방과 변방국에 불교 전도사 파견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불교뿐 아니라 브라마니즘 종교를 비롯하여 자이나교 등 다른 슈라마니즘 종교들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었고, 공적 기관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등 현대적 복지정책을 시행하여 성왕(聖王) 또는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불교를 적극 후원하여 인도 동북부의 슈라마니즘 종교 가운데 하나였던 불교는 인도 전역으로 교세가 확장되었고, 스리랑카와 그리스 등 주변국에까지 소개되었다. 『디파방사』에는 포교를 위해 방문한 국가나 지역의 명칭 및 파견된 승려들의 이름이 남아 있는데, 그 지역은 북부 카슈미르와 간다라 지방에서부터 서북쪽의 이란·히말라야(네팔)·미얀마와 스리랑카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른다. 스리랑카에 파견된 마힌다(Mahinda)의 경우 스리랑카 불교의 시조가 되는 인물로서 아쇼카의 아들로도 전해진다. 중국에 전해진 아쇼카에 관한 기록들은 구법승 법현(法顯, 337~422)과 현장(玄奘, 602~664) 등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여행기에서 왕이 세운 탑에 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고사를 기록하였으며, 중국에는 아육왕사(阿育王寺)가 건립되기도 하였다. 또한 붓다의 발우에 흙을 보시한 인연으로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 미래의 깨달음에 대해 붓다가 미리 전하는 예언과 약속)를 받은 그의 에피소드는 ‘아육왕시토(阿育王施土, 또는 小兒施土)’라고 불리며, 불교미술의 유명한 모티프가 되어 간다라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 【문】 보살이 만나게 되면 곧 공양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뜻에 따라 구하고 찾는가? / 【답】 복덕은 마음을 좇으므로 애지중지한 것을 가져다 공양하면 복을 얻음이 더욱더 많다. 마치 아육왕이 어렸을 때 그가 소중히 여기는 흙을 가져다 부처님께 바친 인연으로 염부제의 왕이 되었고 하루 동안에 8만의 탑을 세우게 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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