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불도징

한글불도징
한자佛圖澄
유형인물
키워드도안, 혜원
시대오호십육국시대
출생232
입적348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의 서역승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에 활동한 서역(西域) 출신의 승려이다. 속성은 백(帛)씨이며, 산스크리트어 명칭은 붓다싱하(Buddhasiṃha)이다. 서역의 구자국(龜玆國) 출신이어서 축(竺) 자를 이름 앞에 붙여 ‘축불도징’이라고도 한다. 232년 태어났고, 9세에 오장국(烏萇國: 현 파키스탄 동북 지방)에서 출가하여 인도의 계빈(罽賓: 현 카슈미르)에서 수학했다고 전해진다. 서진 회제(懷帝) 때인 영가(永嘉) 4년(310)에 둔황을 거쳐 낙양에 왔다. 그때 불도징의 나이 79세였다. 축법호(竺法護, Dharmarakṣa, 239~316)나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344~413)처럼 서역에서 온 저명한 승려들은 대부분 역경승이었다. 그러나 불도징은 역경 작업도 한 일이 없고 남긴 저술도 없다. 그런데도 중국 불교사에서 도안(道安, 312~385), 혜원(慧遠, 334~416)과 함께 초기 중국 불교계의 기반을 닦은 세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불도징의 전기는 『진서(晉書)』 「예술전(藝術傳)」, 『양고승전(梁高僧傳)』 「신이편」 등에 실려있다. 이는 그가 신이승(神異僧)으로 분류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신통력과 주술·예언 등을 통해 후조(後趙)의 석륵(石勒, 재위 319~333), 석호(石虎, 재위 334~349) 등 당시 권력층을 감복시켰다. 나아가 이러한 신이한 교화를 바탕으로 당시의 권력층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활용하였다. 일반 백성들에게 불법을 널리 알렸고 중국인도 출가할 수 있도록 국가의 공인(公認)을 이끌어 내는 등 불교계의 현실적인 기반을 다졌다. 그가 세운 사찰은 893곳, 문도 수는 1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는 경전의 깊은 뜻에 막힘이 없었고 특히 계율을 중시하였다. 이전에 번역된 한역 율전을 정정하기도 하였으며, 스스로도 계율을 엄격히 준수한 것은 물론, 석륵이나 석호 같은 당시 잔학했던 오호(五胡)의 군주에게도 계율을 지킬 것을 계속해서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348년 후조의 수도 업(鄴: 현 중국 허난성)에 있는 궁사(宮寺)에서 11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그가 배출한 유명한 제자로는 도안·법아(法雅)·법화(法和)·법태(法汰)·승랑(僧朗)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도안은 중국불교의 기초를 세운 걸출한 인물로 평가된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 불도징을 불러 물었다. “불도에는 어떤 영험이 있는가?” 불도징은 석륵이 깊은 이치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바로 도술로써 징험해 보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말하였다. “지극한 도는 비록 멀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가까운 일로도 역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곧 적당한 그릇을 가져와, 물을 담고 향을 사르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잠깐 사이에 푸른 연꽃이 피어나, 빛나는 색이 눈부시게 하였다. 석륵은 이로 말미암아 불법을 믿고 감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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