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선무외 |
|---|---|
| 한자 | 善無畏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대일경, 소바호동자경, 소실지갈라경 |
| 시대 | 당(唐) |
| 출생 | 637 |
| 입적 | 735 |
| 주요주석처 | 흥복사(興福寺), 서명사(西明寺), 대복선사(大福先寺) |
당나라 때 활약한 인도 출신의 역경승
당나라 때 활약한 밀교의 조사이자 역경승이다. 산스크리트어 슈바카라싱하(śubhakarasiṃha)를 의역하여 선무외 또는 정사자(淨師子), 무외삼장(無畏三藏) 등이라고 한다. 음사하여 수바게라승가(戍婆揭羅僧訶) 혹은 수파가라(輸波迦羅)라고도 한다. 출신지는 오차국(烏荼國)이라고 전하며, 동인도나 중인도의 지명으로 추측된다. 당나라 현종 때 중국에 건너온 인도 출신의 출중한 스님으로, 금강지(金剛智)‧불공(不空)삼장과 함께 개원삼대사(開元三大士)라 부른다.
선조는 석존의 숙부인 감로반왕(甘露飯王)의 후예라고 전해진다. 출가 전 신분은 왕자(王子)였다. 10세에 전군(全軍)을 장악하고 13세에 즉위했지만, 형들이 일으킨 반란을 계기로 왕위를 형에게 양보하고 출가하였다. 출가 후 나란다 사원에서 달마국다(達摩菊多)를 사사하였고, 그곳에서 대승불교와 밀교를 배웠다. 나란다 사원에서 머무르는 동안 중국 승려 한 사람을 만나 중국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이후 스승이 중국으로 갈 것을 요청하자, 카슈미르와 오장국(烏萇國: 현 파키스탄 동북 지방), 토번(吐蕃: 현 티베트)을 거쳐 개원(開元) 4년(716) 80세의 나이로 중국 장안(長安)에 도착하였다.
중국에 도착한 이후 조정의 두터운 신뢰와 후원을 받았다. 흥복사(興福寺), 서명사(西明寺), 대복선사(大福先寺) 등에 머무르며 역경과 포교에 힘썼다.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大毘盧遮那成佛神變加持經, 『대일경』)』 7권, 『소바호동자경(蘇婆呼童子經)』 3권, 『소실지갈라경(蘇悉地羯羅經)』 3권 등 중요한 밀교 경전을 다수 번역하였다. 『대일경』 7권을 강설하였는데, 그중 6권 31품을 제자 일행(一行)이 필사한 뒤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결과물이 『대일경소(大日經疏)』이다. 신라 출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는 그 문하에서 공부하여 그 나머지 7권에 대한 주석서인 『대비로자나경공양차제법소(大毘盧遮那經供養次第法疏)』를 지었다. 이 두 주석서는 밀교 연구의 결정적 방향을 제시한 역작이다. 개원 20년(732)에 귀국을 요청했지만 허락받지 못하였고, 개원 23년(735) 99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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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수파가라는 당나라 말로 번역하면 선무외란 뜻이다. 중인도 사람으로 석가의 후예이다. 모습과 행동[風儀]이 맑고 훤칠하였으며, 총명함이 남들보다 뛰어났다. 지해(知解)는 오승(五乘)을 궁구하였고 수행은 삼학(三學)을 갖추었으며, 총지와 선관(禪觀)에는 그 근원을 오묘하게 통달하였고, 예술에도 특히 능하여 환히 알지 못한 것이 없었다. 게다가 법을 널리 펴는 것을 업무로 삼았거늘 어찌 어려움과 위험을 꺼렸겠는가? 마침내 중천축을 출발하여 동쪽으로 중국을 향해 떠났는데 중도에 북인도 경계에 이르러서부터 그의 명성은 벌써 중국의 서울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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