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보리달마 |
|---|---|
| 한자 | 菩提達磨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선종, 면벽구년 |
| 시대 |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
| 출생 | 미상 |
| 입적 | 528년 추정 |
중국 선종의 초조
인도에서 중국으로 선(禪)을 전래하여 선종(禪宗)을 개창한 인물로 추앙받는다. 산스크리트어 보디다르마(Bodhidharma)를 음역하여 보리달마(菩提達磨)라 하였고, 통상 달마로 약칭되는데, 그의 전기에 대한 기록은 후대 선종이 융성했을 때 작성된 경우가 많아 학계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픽션으로 구분하여 접근한다.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전기 자료는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 「영녕사조(永寧寺條)」와 달마의 제자 담림(曇林)이 기록한 『약변대승입도사행론(略辨大乘入道四行論)』[『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이라 통칭]의 서문이다. 두 자료에 따르면 달마는 파사국(波斯國: 페르시아) 혹은 남인도 출신으로 중국 낙양에 와 영녕사의 탑을 찬탄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150세라 하였으며, 벽관(壁觀)을 수행하였다. 세간에서는 그를 비방하기도 하였지만 제자로 혜가(慧可)·도육(道育) 등이 있었고, 그의 가르침을 기록한 책이 『이입사행론』이다.
후대의 기록은 점차 달마가 선승들에게 존경받게 되면서 이상화된 내용이 첨가되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양(梁)나라 무제(武帝)와의 만남, 숭산 소림사에서의 9년 면벽 수행, 제자 혜가가 한쪽 팔을 자르며 법을 구함,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번역한 4권본 『능가경(楞伽經)』을 혜가에게 전승함, 보리류지(菩提流志)와 광통율사(光統律師)의 질투를 받아 독살되었다가 관 속에 한 짝 신발만 남겨 둔 채 서천으로 돌아간 일화 등이 그것이다.
· 집필자 : 정희경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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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 초조(初祖)가 되더니 / 부질없이 말하기를, 가사 부촉코자 서쪽에서 왔노라 / 양왕의 진실한 강개(慷慨) 오히려 부러워라 / 차가운 강 건너더니 돌아오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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