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구마라집 |
|---|---|
| 한자 | 鳩摩羅什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승조, 도생, 현장, 금강경, 아미타경, 법화경 |
| 시대 | 남북조시대 |
| 출생 | 344 혹은 350 |
| 입적 | 413 혹은 409 |
중국 남북조시대의 역경가
중국 남북조시대에 활동한 역경가로서, 산스크리트어 쿠마라지바(kumārajīva)의 음사어이다. 약칭하여 나집(羅什)이라고도 한다. 쿠마라(kumāra)는 소년을, 지바(jīva)는 목숨이나 생명을 의미하므로 동수(童壽)라고도 한역한다. 중국의 4대 역경가 중 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중국 불교사에서 불세출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생몰년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는데, 344~413년으로 보는 설과 350~409년으로 보는 설이 양립하고 있다.
구마라집은 인도 바라문 출신의 아버지와 구자국(龜玆國: 현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왕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7세에 출가한 뒤 인도 계빈(罽賓, 현 인도 카슈미르)으로 유학을 가서 아비달마불교를 배웠다. 이후 대승으로 전향하여 중관파(中觀派)의 학설을 연구하였다. 천성적인 자질과 총명함으로 서역 일대에 명성이 널리 퍼졌고, 중국에 이르기까지 떨치게 되었다.
384년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 재위 357~385)은 구마라집의 명성을 듣고 그를 얻기 위해 장수 여광(呂光)을 보내 구자국을 침략하기에 이른다. 결국 구마라집은 여광의 포로가 되었고, 그의 자질을 알아보지 못한 여광은 그를 여인과 동침시켜 파계하게 만든다. 여광은 귀국 도중 부견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양주(涼州: 현 중국 간쑤성)에 후량(後涼)을 세웠다. 401년 후진(後秦)의 요흥(姚興, 재위 394~416)이 후량을 정벌하고 구마라집을 국사(國師)로 초청할 때까지, 구마라집은 양주에서 약 15년간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후진 요흥의 초청으로 장안에 들어간 구마라집은 경론 번역에 종사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가 번역한 경전으로는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아미타경(阿彌陀經)』·『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등이 있고, 논서로는 『중론(中論)』·『백론(百論)』·『십이문론(十二門論)』·『대지도론(大智度論)』 등이 있다. 『십송률(十誦律)』·『십송비구계본(十誦比丘戒本)』 등 계율 관련 경전과 『성실론(成實論)』 같은 아비달마불교 계통의 논서도 번역하였는데, 총 300권 이상에 달한다. 제자로는 승조(僧肇, 384~414), 도생(道生, ?~434) 등을 비롯하여 3천 명이 넘었다고 전한다.
보통 중국 역경사에서 구마라집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안세고(安世高)‧지루가참(支婁迦讖)‧축법호(竺法護) 등이 활약하던 시대의 한역을 고역(古譯), 구마라집이 풍미하던 시기의 한역을 구역(舊譯), 현장(玄奘, 602~664) 이후를 신역(新譯)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구역의 역경가로 출중했던 인물이 바로 구마라집이다. 그만큼 중국 역경사에서 구마라집이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과 비중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 현재까지도 동아시아에서 애독하는 『법화경』, 『금강경』, 『아미타경』 등의 대승 경전 상당수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것이다. 천태종(天台宗), 삼론종(三論宗) 등 동아시아의 주류 종파에서 소의로 삼는 경론이 대부분 구마라집의 번역인 것이다. 공(空), 열반(涅槃) 등의 중요한 불교 용어가 실질적으로 정착된 것도 구마라집에 이르러서이다. 이처럼 구마라집의 한역이 동아시아 불교계에 끼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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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鳩摩羅什)은 중국말로 동수(童壽)라 하며 천축국(天竺國) 사람이다. 집안 대대로 나라의 재상(宰相)을 지냈다. 구마라집의 조부(祖父) 구마달다(鳩摩達多)는 뜻이 크고 기개(氣槪)가 있어 남에게 구속받지 않았다. 무리 가운데 매우 뛰어나 명성(名聲)이 나라 안에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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