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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결사

한글봉암사결사
한자鳳巖寺結社
유형용어
키워드결사, 성철, 선, 공주규약
1947년부터 약 2년간 봉암사에서 행해진 수행 결사 운동.
광복 이후 ‘부처님 법대로 살자’라는 기치를 내걸고 경상북도 문경 봉암사(鳳巖寺)에 스님들이 모여 함께 수행한 결사운동이다. 1947년부터 대략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진행되었지만, 엄격한 수행정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봉암사결사가 시작된 때는 1947년 10월경으로 본다. 결사의 주축을 담당했던 성철(性徹, 1912~1993) 스님이 자필로 쓴 기록 가운데 “1947년(정해년) 가을에 나는(36세) 크나큰 환상을 안고 문경 봉암사로 갔었다.”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1942년 가을에 성철 스님과 청담(靑潭, 1902~1971) 스님이 만나 함께 정진할 것을 약속했다.”라는 전언이 남아 있어, 이 결사가 몇 해 전부터 기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47년 여름, 두 스님은 장경과 불서를 인수하게 되는데, 장경은 해인사(海印寺)로, 불서는 봉암사로 보내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해 가을 봉암사에서 스님들이 함께 모여 수행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때 처음 결사에 참여한 인물로는 성철 스님을 비롯해 자운(慈雲, 1911~1992)·우봉(愚鳳, 1898~1953)·보문(普門, 1906~1956) 스님 등이 있다. 이후 혜암(慧菴, 1920~2001)·월산(月山, 1913~1997)·성수(性壽, 1923~2012)·법전(法傳, 1926~2014)·지관(智冠, 1932~2012)·의현(義玄, 1936~현재) 스님 등이 참여하여 비구 29명이 함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산내 백련암에서도 비구니 15명이 정진하였다. 1949년 초부터 봉암사가 있던 희양산에 빨치산이 출몰하였고, 이 때문에 경찰과 군인들이 왕래하기 시작하였다. 수행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결국 수행처를 고성 옥천사 문수암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1949년 추석 직후 성철 스님은 봉암사를 나왔고, 이듬해 3월 무렵에는 만성 스님만이 봉암사에 남았다. 봉암사결사가 오늘날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엄격한 수행정신에 있다. 청정한 수행을 통해 왜색불교를 청산하고,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한 점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귀감이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생활 규범인 공주규약(共住規約)에도 잘 나타난다. 대표적인 규정으로 ① 부처님 계법(戒法)과 조사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수행하여 깨달음[大果]을 이루고자 할 것, ② 매일 두 시간 이상 노동할 것, ③ 백월(白月)과 흑월(黑月)에 포살(布薩)할 것, ④ 좌차(坐次)는 계납(戒臘)에 의할 것 등이 있다. 이러한 규율을 정하고 실천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수행 전통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봉암사에서의 결사정신은 오늘날 조계종의 수행 가풍에 이어지고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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