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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규

한글청규
한자淸規
유형용어
키워드상당법어, 좌선
선종 사원의 조직 규정과 대중의 일상생활 규칙으로서, 총림의 대중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식
율장을 선원 생활에 맞추어 재조직하면서 선원 총림의 운영 방법 및 수행 방법, 각종 제도와 규칙, 직제, 선종 가람 구조 등의 대원칙을 명문화한 것이다. 청규(淸規)의 ‘청(淸)’은 ‘청정한 총림의 가풍’을 말하며, ‘규(規)’는 수행자가 의지해야 할 ‘규구준승(規矩準繩)’, 즉 규칙·법칙 등을 의미한다. 선불교가 하나의 교단이나 종파로 성립한 것은 백장 회해(百丈懷海, 720~814)에 의해서다. 백장은 선종의 독립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최초의 선종 사원인 백장총림을 세웠다. 이어 784년(당 덕종 1) 총림의 법전(法典)인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제정하여 기존의 율장을 선원 총림의 운영 및 수행 등에 맞추어 현실적으로 재정비해 제시하였다. 송나라 초의 한림학사인 양억(楊億, 974~1020)은 『선문규식(禪門規式)』에서 백장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대소승 계율에 국한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대소승 계율과 차별을 두려고도 하지 말고, 널리 잘 절충하여 올바른 제도와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뜻을 세워서 별도로 선종 사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백장이 율종 사원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것은 율종의 수행 방법과 목적, 설법 내용, 그리고 생활 방법과 규칙 등 여러 가지가 선불교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에 독자적인 생활 방식과 제도, 수행 방법 등을 확립하기 위해 대웅산 백장사, 즉 백장총림을 설립하였다. 백장은 권력자들의 후원을 거부하고, 그 대안으로 보청법(普請法: 노동, 울력)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생활 철학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였다. 백장 문하의 납자들은 도시와는 거리가 먼 백장사에서 권문세가들의 영향을 벗어나 오로지 수행에 매진할 수 있었다. 현재 『백장청규』는 전하지 않고 『선원청규(禪苑淸規)』 등이 전해지고 있다. 『선원청규』는 장로 종색(長蘆宗賾)이 1102년에서 1106년 사이에 저술했다고 한다. 『선원청규』의 판본은 일본에 6종이 보관되고 있으나, 고려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1202년 중각(重刻)된 보주본(補註本)이다. 고려본만이 1111년의 판본으로 『선원청규』가 지어지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에 수입되어 판각되었다.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등에 『선원청규』의 인용이 보이는데, 이를 보면 『선원청규』가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오용석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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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선원청규편찬위원회 | 조계종출판사 | 201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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