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즉심즉불 |
|---|---|
| 한자 | 卽心卽佛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본래면목, 무위진인 |
스스로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
즉심시불(卽心是佛), 심즉시불(心卽是佛), 시심즉불(是心卽佛), 자심시불(自心是佛), 차심즉불(此心卽佛) 등과 같이 사용되는데, 스스로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이다.
어떤 학인이 마조에게 어떤 이유로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라고 말씀하느냐고 묻자 마조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울음을 그치고 나면 어떠하냐고 묻자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하였다. 자신의 말을 뒤집은 듯한 마조의 ‘비심비불’이라는 말에 대해 『선문염송설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는 시도는 마치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 게다가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듣고, 또다시 마음을 부처라고 안다면 이 또한 나귀를 타고서 내리지 못하는 꼴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즉심시불은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 계통의 선자들이 주장했던 선 사상의 핵심이다. ‘안사의 난’을 전후하여 일어난 여러 종파 가운데 최종적으로 살아남아 당나라 선의 주류를 형성한 것은 홍주종(洪州宗), 즉 마조 도일 계통이었다. 중당 이후 마조선이 점차 주류를 형성하였고, 거기에 대항하여 석두 희천(石頭希遷, 700~790) 계통이 흥행하였다. 『마조어록(馬祖語錄)』에서 마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중들이여! 각자 자신의 마음이 부처이며, 이 마음 그대로가 바로 부처라는 사실을 확신하라. 남천축국(南天竺國)에서 온 달마대사는 이 땅에 상승(上乘)의 일심지법(一心之法)을 전해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즉심즉불은 현실태의 자신이 그대로 본래성의 현현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마음의 근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따로 수행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즉심즉불은 ‘부처’와 같은 성스러운 본질이 마음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미혹된 마음을 걷어 내야 깨달음의 마음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 말은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즉심즉불 사상은 결국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의 작용 그대로가 부처로서의 본래성이 드러난 것이라는 ‘작용즉성(作用卽性)’의 사상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평상심이 도’라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평상심이 도’라는 말은 즉심즉불과 같은 뜻이다.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시비나 범성의 구분도 없는 평소 있는 그대로인 마음이 도라는 것이다. 평상심의 도는 닦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인위적이며, 목적을 갖는 수행은 마음의 본래성을 더럽힐 수 있다. 이러한 ‘무사(無事)’를 주장하는 선의 가풍은 송대에 이르러 폐단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간화선과 묵조선 같은 수행을 중시하는 선풍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 집필자 : 오용석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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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우(伏牛) 화상이 마(馬) 대사의 심부름으로 편지를 들고 국사에게 왔는데, 국사가 물었다. “마 대사가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지도하시는가?” 복우가 대답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러고는 이어서 또 물었다. “다른 말씀은 없던가?” “부처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라 하시고, 또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라 하십니다.” 이에 국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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