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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사이진

한글즉사이진
한자卽事而眞
유형용어
키워드입처개진, 입처즉진, 촉목회도, 목격도존, 촉사이진, 촉목보리
일상에서 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으로 현상을 마주하는 그대로가 깨달음이고 진실한 경지라는 말
우리의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감지하는 일체가 그대로 본래의 깨달음이고 진실한 경지라는 말이다. 승조(僧肇, 384~414)가 저술한 『조론(肇論)』의 「부진공론(不眞空論)」에는 촉사이진(觸事而眞)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즉사이진(卽事而眞)의 즉(卽)은 ‘곧 …이다’라는 의미로서 즉시(卽是)와 통하는 말이다. 특히 이 경우에 즉(卽)은 접속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인다. 따라서 현상[事]에 즉한다, 곧 접촉한다[觸]는 말로서 현상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로써 현상과 하나가 되는 그 상태가 바로 다름이 아니라 그대로 진(眞) 곧 깨달음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은 뜻에서 즉사이진이야말로 실상의 안목으로 보면 어떤 조작도 없는 본래의 사물 그대로가 모두 깨달음이라는 의미로 활용된다. 이 말은 천태종과 화엄종의 교설과 밀접하여 이들 종파의 문헌에 상세히 나타난다. 넓게는 선종(禪宗)의 선법을 밝히는 개념으로 활용되기도 하며, 중국불교의 역사에서는 일찍부터 주창되어 왔다. 이 말은 특히 보리달마(菩提達磨, 6세기 전후)로부터 연원하는 중국의 조사선(祖師禪)에서 사상적인 바탕으로 삼는 본래성불(本來成佛: 일체중생은 본래부터 성불해 있는 존재)의 사상과 부합하는 점이 있어서 중국 선종의 사상과 다양하게 연결되어 전승되고 발전하였다. 중국 선종 초조인 달마의 어록에서는 일체중생에게 본래부터 불성이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까닭에 그것을 깊이 믿게 되면 그대로 깨달음이라고 말한 심신(深信)에 통하고, 제2조 혜가(慧可)의 선심(禪心), 제3조 승찬(僧璨)의 신심(信心), 제4조 도신(道信)의 수일불이(守一不移), 제5조 홍인(弘忍)의 수본진심(守本眞心), 제6조 혜능(慧能)의 단용차심(但用此心), 남악 회양(南嶽懷讓)의 단막염오(但莫染汚),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도불용수(道不用修) 등으로 전승되었다. 이런 까닭에 중국의 조사선풍에서는 돈오(頓悟)의 개념이 중요시되었다. 이 경우에 돈오는 수행의 결과로 획득되는 깨달음이 아니라 이미 수행자 자신에게 태어나면서부터 고스란히 갖추어져 있지만 잠재되어 있던 불성이 비로소 활짝 열린다는 의미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일체의 외부 자극에 대하여 그것이 본래부터 깨달음으로서 진실한 상태임을 자각할 것이 요구되었다. 그 자각하는 행위를 깨달음이라고 하였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5에서는 “도흠(道欽) 선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깨달음[道]이 어디 멀리 있겠는가. 접촉하는 그대로가 진실한 깨달음이다. 부처님이 어디 멀리 있겠는가. 그것을 체득하면 곧 신령하다. 나는 평소에 그대들에게 ‘어찌하여 가사와 발우 밑의 좌포를 깐 바로 그 자리에서 곧장 참구하지 않는가.’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즉 중국의 조사선풍에서 즉사이진은 깨달음이야말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바로·여기·이것으로 작용하고 있는 근거를 일러준 말이다.
· 집필자 : 김호귀

용례

  • 둘째, 만약 이치에 따르는 3가법이라면 온갖 세간은 모두가 허깨비와 같나니, 곧 사(事)이면서 진(眞)이다. 하나의 일도 진리 아님이 없거늘, 다시 무슨 물건을 상대하여 진리가 아니라 하겠는가? 저 3장의 절대(絶對)로 본다면 도리어 절대가 아니다. 곧 사이면서 진이라 이것은 절대이다. 이는 통교(通敎)의 절대(絶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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