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인무아

한글인무아
한자人無我
산스크리트어pudgala-nairātmya
유형용어
키워드무아, 윤회, 중, 연기, 아공법유, 아공법공, 법무아
주체나 실체는 없다는 무아설을 찰나법들의 인연상속으로 설명하는 아비달마불교의 아공법유 해석
모든 현상에서 자아라고 간주할 만한 주체나 실체는 없다는 무아(無我, anātman)설을 찰나법들의 인연상속(因緣相續)으로 주장하는 부파불교의 입장이다. 붓다의 설명에 따라 불교철학은 윤회(輪廻, saṃsāra)설과 무아설을 중심 교리로 삼는다. 그러나 실재론적 관점에서 윤회설은 생을 반복하는 주체를 요구하고 무아설은 그러한 주체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윤회설과 무아설에 관한 해석은 난제이다. 아비달마불교에서는 찰나법의 인연상속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윤회설과 무아설을 설명한 붓다의 철학적 입장은 중(中, majjha)과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이다. 중은 유(有)·무(無), 일(一)·이(異), 자작(自作)·타작(他作), 상(常)·단(斷)의 양극단의 견해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연기는 12법의 연쇄로부터 사견(邪見, micchadiṭṭhi)이 발생하여 생사(生死)의 고통을 반복하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아비달마불교는 연기를 찰나법연기(刹那法緣起)와 십이연기로 분리한다. 찰나법연기는 자성(自性, svabhāva)을 지니며 찰나적으로 생멸하는 법이 인(因, hetu) 혹은 연(緣, paccaya)을 통해 상속(相續, santāna)한다는 것이다. 아비달마불교는 법이 찰나생멸하기 때문에 상주론이 아니고, 그 법들은 인연상속하기 때문에 단멸론이 아니라는 논리로 무아를 설명한다. 그리고 십이연기를 삼세양중인과설(三世兩重因果說)로 해석하여 윤회를 설명한다. 인무아는 현상이 법들의 인연상속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자아라고 간주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아공법유(我空法有)의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찰나법연기설은 윤회설과 무아설을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이해한 것이다. 초기불교에서 연기와 십이연기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초기불교에서 연기는 모든 현상의 인과상속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12법의 조건[緣, paccaya]적 발생으로부터 고통[苦, dukkha]이 함께 발생[集起, samudaya]되어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붓다는 스스로 인식한 현상에서 무명(無明, avijjā)과 갈애(渴愛, taṅha)를 통해 자아나 소유의 존재관을 형성하고, 의욕(意欲, chandarāga)에 따라 신(身)·구(口)·의(意)로 업을 지으며 고통을 반복하는 구조를 12법의 연쇄, 즉 연기라고 말한 것이다. 초기불교 입장에서 윤회는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업보에 따른 의식성을 분류해 놓은 삼계(三界, ti-dhātu)에서 이루어진다. 중생의 마음은 수없이 많고 다양할지라도 업에 따른 의식성은 삼계 중 어느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 삼계는 중생들이 업에 따라 지니는 의식 영역이면서 그 모든 중생들의 의식성을 포섭하는 세계관이다. 윤회는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의 구조를 표현한다. 무아설은 삼계의 경험에서 자아라고 간주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견해이다. 무아설은 무상(無常, anicca), 고, 무아에 따른 통찰과 수행을 통해 성취된다. 초기 불교철학에서 윤회설과 무아설은 존재론적 충돌이 아니라 업보에 따른 분류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용수(龍樹, Nāgārjuna)는 팔불(八不)을 통해 찰나법의 자성(自性, svabhāva)이 공성(空性, śūnyatā)임을 드러내고 연기의 의미를 회복하고자 한다. 중관불교의 이러한 입장을 아공법공(我空法空)이라고 한다. 또 대승불교에서는 인무아를 법무아(法無我, dharma-nairātmya)와 함께 이무아(二無我)의 범주에 둔다.
· 집필자 : 우동필

용례

관련자료

  • 중론: 용수의 사상·저술·생애의 모든 것
    도서 가쓰라 쇼류‧고시마 기요타카, 배경아 역 | 서울: 불광출판사 | 2018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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