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이불병좌 |
|---|---|
| 한자 | 二佛竝坐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견보탑품, 다보여래, 이불병좌상 |
『법화경』 제11 「견보탑품」에서, 칠보탑 안에 다보여래와 석가여래가 나란히 앉아 계신 모습
『법화경』 제11 「견보탑품(見寶塔品)」에서, 땅속에서 솟아오른 칠보탑(七寶塔) 안에 다보여래와 석가여래가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나란히 앉아 계신 모습을 말한다.
「견보탑품」에서는, 땅속에서 커다란 칠보탑이 공중으로 높이 솟아오르면서 그 안에서 큰 소리가 흘러나온다. “훌륭하고 거룩하십니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평등하고 큰 지혜로 『법화경』을 대중에게 설하시니, 설하는 것이 모두 진실하나이다.”
이는 다보여래가 과거에 보살로 수행할 때, “만약 내가 성불하여 멸도한 후에 시방 국토 어디에서나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나의 전신사리(全身舍利)를 모신 탑묘(塔廟)가 그 경을 듣기 위하여 그 앞에 솟아나, 증명하며 거룩하다고 찬탄하리라.”라고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서원에 따라 현세에 석가여래가 영산회상에서 법화를 설함을 찬탄하고 증명하기 위해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이 다보여래의 모습을 뵙길 원하자, 과거에 서원한 바와 같이 시방에서 교화하고 있는 석가여래의 분신불(分身佛)들을 모두 불러들이도록 하였다. 이에 석가여래가 칠보탑의 문을 여니, 그 안에는 과거 한량없는 천만억겁 이전에 멸도하신 다보여래가 전신(全身) 그대로 결가부좌하고 계셨다. 그때 다보여래는 탑 안에서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석가여래에게 와서 앉도록 하였다. 이에 보탑 안에 다보여래와 석가여래가 함께 나란히 앉아 계신 것을 보게 되니, 이 모습을 이불병좌(二佛竝坐)라고 한다.
이처럼 두 여래가 함께 앉아 계신 것은 과거불과 현재불이 함께 자리함으로써, 『법화경』 교설의 진실성을 증명하고 법화의 설법이 과거·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지속되기를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는 『묘법연화경문구(妙法蓮華經文句)』 권8하에서 삼신불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다보불은 법신불(法身佛)을 나타내고, 석가불은 보신불(報身佛)을 나타내며, 시방에서 모여든 분신불은 응신불(應身佛)을 나타낸 것이다. 이 삼신불은 비록 셋이지만,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즉 두 여래가 함께 앉아 계신 것은 법신불과 보신불이 둘이 아님[法報不二]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이뿐만 아니라, 시방의 분신불들까지 모두 모여들도록 하여 응신불까지 함께하게 되니, 결국 법·보·응의 삼신불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것은 곧 삼신불이 서로 같지도 않되 또한 다르지도 않다[不一異]는 실상(實相)을 시각화하여 보여 준 것이다.
또한 길장(吉藏)은 『법화논소(法華論疏)』 권하에서 “법신은 둘이 아니므로 다보불은 유일하지만, 화신의 작용은 하나가 아니므로 몸을 나누면 다양하다.”라고 하며, 『법화현론(法華玄論)』 권1에서는 “다보불과 석가불이 나란히 앉아 계신 것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동일한 법신임을 드러내려는 뜻이니, 모두가 동일한 법신이므로 모든 교적(敎迹)을 드리운다.”라고 주장한다.
이불병좌의 교설은 중국에서 북위 시대 이후 조상(彫像)이나 회화로 활발하게 조성되었다. 특히 중국의 윈강석굴, 둔황석굴, 룽먼석굴을 비롯한 여러 석굴에 다양한 형태의 이불병좌상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황룡사지(皇龍寺址) 출토 금동이불병좌상과 전대전사지(傳大典寺址) 출토의 청동이불병좌상, 고려시대의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같은 몇 가지만 남아 있다. 그 밖에 발해에서도 동경 용원부 유지에서만 이불병좌상이 여덟 구 넘게 출토되었다고 하니, 발해 지역에서 『법화경』이 크게 유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집필자 : 오지연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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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보배탑 가운데 계신 다보불께서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석가모니불께 드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가모니불께서는 이 자리에 앉으소서.” 그러자 곧 석가모니불께서 그 탑 가운데로 드시어 그 반으로 나눈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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