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십여시 |
|---|---|
| 한자 | 十如是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방편품, 제법실상, 삼전독문, 백계천여 |
모든 존재에 갖춰진 열 가지 특성으로서, 제법실상의 구체적 내용을 나타낸 말
『법화경』 제2 「방편품(方便品)」에서 “오직 부처님(석가모니불)과 다른 부처님들만이 모든 법의 참모습[諸法實相]을 다 알 수 있으니, 그것은 모든 법의 여시상(如是相)·여시성(如是性)·여시체(如是體)·여시력(如是力)·여시작(如是作)·여시인(如是因)·여시연(如是緣)·여시과(如是果)·여시보(如是報)·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을 말한다.”라고 설하였다. 이 가운데 ‘여시(如是)’로 시작하는 열 가지 항목을 ‘십여시’라 하고, 줄여서 십여(十如)라고도 한다.
이 경문에 의거하면, 십여시는 오직 부처님의 지혜로만 모두 알 수 있는 제법실상의 내용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한 교설이다.
십여시에서 상(相)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 성(性)은 내면에 갖춰진 본성, 체(體)는 그러한 모습과 성품을 갖춘 주체, 력(力)은 주체가 갖춘 잠재적 능력, 작(作)은 그 힘으로 발현되는 작용, 인(因)은 직접적 원인, 연(緣)은 간접적 조건, 과(果)는 인과 연의 화합으로 초래되는 결과, 보(報)는 과보로서 후세에까지 미칠 수 있는 결과이다.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은 처음[本]의 모습[相]과 끝[末]의 과보[報]가 궁극에 평등하여 하나의 실상[一實相]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십여시는 이와 같은 열 가지 항목을 통하여, 존재의 차별적 특성과 궁극적 불이성(不二性)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예부터 십여시에 대해서는 제가(諸家)의 서로 다른 해석들이 전해진다. 십여시는 단지 지혜의 작용이라고 하거나, 혹은 부처님이 갖춘 십력(十力)의 작용이라거나, 삼승법을 설하기 위한 내용으로 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는 모두 그렇지 않다고 하며, 십여시는 미혹과 깨달음[迷悟], 현상과 이치[事理]가 서로 다름없으며, 방편과 진실[權實]이 한결같다[一如]는 뜻을 모두 포괄한다고 설하였다.
먼저 지의의 스승인 남악 혜사(南岳慧思, 515~577)는 십여시의 문장을 ‘여(如)’에서 끊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즉 제법여(諸法如), 시상여(是相如), 시성여(是性如) 등으로 하여 모든 존재의 여(如)를 볼 수 있도록 강조하였으므로, 이것을 십여(十如) 또는 십여경(十如境)이라고 한다. 지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읽어서 공(空)·가(假)·중(中) 삼제(三諦)의 뜻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것을 삼전독문(三轉讀文)이라고 한다. 즉 『묘법연화경현의(妙法蓮華經玄義)』 권2상에서는 시상여(是相如)·여시상(如是相)·상여시(相如是)와 같이 바꾸어 읽게[轉讀] 하고 있다. 첫째 방법은 ‘이 모습이 여여하다[是相如]’는 뜻으로 즉공(卽空)의 진리를 보고, 둘째는 ‘이와 같은 모습[如是相]’의 뜻으로 즉가(卽假)의 진리를 보며, 셋째는 ‘모습이 이와 같다[相如是]’고 하여 즉중(卽中)의 진리를 본다. 공·가·중이 일시에 갖춰져 서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을 일러 ‘실상(實相)’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 지의는 『묘법연화경문구(妙法蓮華經文句)』 권3하에서 십여시를 십법계(十法界)에 배대하여 해석한다. 왜냐하면 경에서 ‘제법의 여시상’ 등으로 설하였는데, ‘제법’은 곧 십법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십법계 중 앞의 아홉 법계에 갖춰진 십여시는 방편[權]이고, 마지막 불법계의 십여시는 진실[實]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상적 해석일 뿐, 이치[理]로 말하자면 십계가 본래 차별이 없어 평등하므로 곧 십계에 방편과 진실이 모두 갖춰져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천태 이전에 광택사(光宅寺) 법운(法雲)의 경우는, 십여시에서 앞의 다섯은 방편[權]으로 범부에 속하고, 다음의 넷(인·연·과·보)은 진실[實]로서 성인에 속하며, 마지막의 본말구경등은 방편과 진실을 총체적으로 맺음[總結權實]이라고 한다. 또 북쪽의 조사[北地師]는 앞의 다섯은 방편, 뒤의 다섯은 진실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지의는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광택의 견해에서는 범부에게 인·연·과·보가 없게 되고, 성인에게 성·상·체·력·작(性相體力作)이 결여되니, 곧 범부에게는 진실이 없고 성인에게는 방편이 없게 된다. 북지사의 경우는 사람들의 생각에 치우친 견해이다. 그러므로 지의는 범부와 성인의 세계를 망라하는[六凡四聖] 십법계에 나아가 십여시를 논한 것이다.
또한 지의는 십여시의 교설을 그대로 실천행법에 적용하여 원돈지관(圓頓止觀)을 확립하였다. 즉, 십법계의 십여시를 근간으로, 십계의 각 법계에 나머지 아홉 법계가 갖춰져 있어 백법계를 이루므로 백계천여(百界千如)가 되고, 그 각각에 오음(五陰)세간·중생세간·국토세간이 갖춰짐을 한 생각에 살펴야 한다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경계를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 집필자 : 오지연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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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어라, 사리불아. 다시 말할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부처가 성취한 가장 희유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은,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들만이 모든 법의 실상을 다 아실 수 있기 때문이니라. 이른바 여시상·여시성·여시체·여시력·여시작·여시인·여시연·여시과·여시보·여시본말구경등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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