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석가모니불 |
|---|---|
| 한자 | 釋迦牟尼佛 |
| 산스크리트어 | Śākyamuni-Buddha |
| 팔리어 | Sakyamuni-buddh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과거칠불, 간다라, 마투라, 사리, 오시팔교 |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으로, 불교의 교조
석가족[釋迦]의 성자[牟尼]라는 뜻으로, 석가라고도 약칭한다. 사가야모니(奢迦夜牟尼), 석가모낭(釋迦牟曩), 석가문(釋迦文)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능인(能仁)·능인(能忍)·능적(能寂)·능만(能滿)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과거칠불 중에서는 일곱 번째에 해당하며, 가섭불(迦葉佛) 이후의 부처님이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지금의 네팔 남부, 인도 국경의 룸비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슛도다나(śuddhodana), 어머니는 마야(māyā)부인이다.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ārtha)로, 일찍이 어머니를 잃어 이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에 의해 양육되었다. 16세에 야쇼다라(Yaśodhara)와 혼인하였고 라훌라(Rahula)라는 아들도 낳았으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무상(無常)함을 느끼고 29세에 출가한다. 6년간의 수행 끝에 35세 때 보드가야(Bodhgayā)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사르나트(Sarnāth)에서 법(法)을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45년간 라자그리하(Rājagrha), 슈라바스티(Śrāvastī) 등지에서 가르침을 전했다. 그리고 80세에 쿠시나가라(Kuśinagara) 사라수(沙羅樹) 아래에서 열반(涅槃)에 든다. 석가모니불의 생몰 연대에 관해서는 이설(異說)이 존재하며, 붓다의 생애를 전하는 경전으로는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서응본기경(瑞應本起經)』·『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중본기경(中本起經)』 등이 있다.
석가모니불의 열반은 제자들에게 큰 슬픔을 안겼고, 이후 그의 유골을 모셔 숭배하는 신앙을 낳았다. 그렇게 부처님의 사리(舍利, śarīra)를 모신 불탑(佛塔)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불탑 신앙이 점차 ‘각각의 중생들에게도 내재한 불탑이 있다.’라고 여겨지면서 여래장(如來藏) 사상으로 발전했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불교 교단 형성 초기에는 그의 존상(尊像)을 만드는 것이 금기시되다가 간다라(Gandhara)와 마투라(Mathura)를 중심으로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고려시대 운묵 무기(雲黙無寄, ?~?)는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이라는 저술을 남겼는데, 석가여래의 행적과 불교가 전래된 역사에 대해 서술한 것으로 권상과 권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자신을 ‘천태말학(天台末學)’이라고 지칭하면서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에 의지하여 총 776구의 게송을 편집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천태 교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석가모니불의 일대기 역시 천태에서 강조하는 오시팔교(五時八敎)설에 근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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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시여, 감자 성바지로써 백정왕의 아들의 이름은 살바실달(蕯波悉達)이신데 출가하여 도를 닦고 일체 종지를 이루셨습니다. 온 세상에서 부르시기를 석가모니라 하는데, 지금 1,250의 아라한과 함께 왕사성의 대숲 가운데 머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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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두 눈썹 사이 백호상(白豪相)에서 보살 힘 광명이라는 광명을 놓으시니 백천 아승기 광명이 그 권속이 되고, 시방 모든 부처 세계를 빠짐없이 두루 비추니 삼악도의 고통은 모두 그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 법회의 대중을 다 비추어 여래의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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