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상좌부 |
|---|---|
| 한자 | 上座部 |
| 산스크리트어 | sthaviravāda |
| 팔리어 | theravād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대중부, 결집, 스리랑카, 대사파, 삼장, 마힌다 |
불교 교단이 최초로 분열할 때 보수적인 경향의 장로가 중심이 되었던 부파
불교 교단이 최초로 분열할 때 보수적인 경향의 장로(長老, thera)가 중심이 되었던 부파이다. 붓다 입멸 후 100년 정도 지났을 무렵, 단일했던 교단은 보수적 경향의 장로를 중심으로 한 상좌부와 진보적 경향의 비구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부(大衆部, Mahāsaṅghika)의 두 파로 분열하게 된다. 남방 전승에 따르면, 진보적 경향의 비구들이 열 가지 일[十事]을 행하는 것이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보수적 경향의 장로들이 반대한 것이 그 원인이 되었고, 북방 전승에 따르면, 아라한의 깨달음과 관련하여 대천(大天)이 제시한 다섯 가지 주장[五事]을 보수적 경향의 장로들이 반대한 것이 그 원인이 되었다. 이때 상좌부는 경(sutta)과 율(vinaya)에 대한 ‘제2차 결집’을 시행하였다.
스리랑카 역사서인 『디파방사(Dīpavaṃsa, 島史)』와 『마하방사(Mahāvaṃsa, 大史)』에 따르면, 아소카왕(Asoka, 재위 기원전 270~기원전 230) 시대에 상좌부의 목갈리풋타 팃사(Moggaliputta Tissa)를 중심으로 ‘제3차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결집은 북방 전승에서는 전해지지 않는다. 목갈리풋타 팃사는 아소카왕의 지지를 받아 분별설(分別說, vibhajjavāda)을 기본으로 삼고 제3차 결집을 행하였다. ‘분별설’이란 진리를 진리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그것이 진리인 이유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명하는 것이다.
3차 결집 후 목갈리풋타 팃사는 인도 주변 국가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아소카왕의 아들인 마힌다(Mahinda) 장로가 불교를 전하기 위해 스리랑카에 파견된다. 이때 스리랑카에는 팔리(Pāli) 삼장(三藏, tipiṭaka)과 주석서가 함께 전해졌다고 한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팔리 삼장은 이후 외부로부터의 침입 등으로 전승에 위기를 맞게 되고, ‘제4차 결집’에 의해 최초로 문자로 기록된다. 한편 함께 전해졌던 주석서는 마힌다 장로에 의해 싱할리어로 옮겨져 계속 보강되면서 전승되었는데, 5세기 대사(大寺, Mahāvihāra)파의 붓다고사(Buddhaghosa)에 의해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淸淨道論)』를 근간으로 한 팔리 주석서로 다시 태어난다. 대사파는 인도에서 전해진 상좌부 불교의 분별설(Vibhajjavāda)의 견해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인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승 등의 교리를 받아들인 무외산사(無畏山寺, Abhayagirivihāra)파와 오랫동안 대립하였다. 그러나 결국 무외산사파는 세력을 잃고 대사파의 정통 상좌부 불교로 통합되었다.
· 집필자 : 한상희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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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주(師子洲: 스리랑카)는 모두 상좌부[上座]를 따르고, 대중부[大衆]는 여기에서 배척을 받는다. 그러나 남해(南海) 여러 주[諸洲]에 10여 국이 있는데, 순전히 오직 유부(有部)를 근본으로 하고, 정량부[正量]도 가끔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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