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비보사찰 |
|---|---|
| 한자 | 裨補寺刹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도선, 밀기 |
도선의 비보사탑설에 따라 지정되거나 건립된 사원
도선(道詵, 827~898)의 비보사탑설(裨補寺塔說)에 따라 지정되거나 건립된 사원을 말한다. 비보사탑설에서 ‘비보’는 모자란 것을 보충한다는 뜻으로, 산천의 순역(順逆)을 살펴서 지덕(地德)이 쇠약하거나 산천이 거스르는 형세를 띤 곳에 사찰‧탑‧불상 등을 세워서 지세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도선의 비보사탑설의 사상적 연원에 대해서는 풍수지리·음양오행·밀교 등의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고려 말 나옹 혜근(懶翁惠勤, 1320~1376)의 제자 굉연(宏演)이 지은 도선의 전기인 『고려국사도선전』에서는 “당나라 일행이 〈삼한산수도(三韓山水圖)〉를 그리고, 그 가운데 3,800곳에 점을 찍었다. 그리고 사람이 병들면 혈맥을 찾아 침과 뜸을 놓으면 병이 낫는 것처럼, 산천의 병도 그러하여, 3,800곳에 사원을 창건하거나 불상을 조성하거나 탑과 부도를 세우면 병든 사람에게 혈맥을 찾아 침과 뜸을 놓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데, 이를 비보라고 한다.”라고 하여, 밀교 전승설을 지지하는 근거를 보여 주고 있다.
고려 태조는 고려왕조 운영의 지침이 될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비보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고려사』 권2 세가(世家) 2 태조 26년 4월]. 이에 따르면 모든 사원은 도선이 점쳐 놓은 산수의 순역에 따라 개창한 것인데, 도선은 자신이 점쳐 놓은 곳 이외에 함부로 절을 더 지으면 지덕을 손상하여 왕업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도선의 비보사찰설을 지세의 순역과 지덕에 연관시킴으로써, 국가의 운명에 결부시킨 것이다.
고려시대에 도선의 『밀기(密記)』에 등재된 사찰은 중앙과 지방에 70여 개였고, 다른 비보에 등재된 사찰은 수천 곳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태종실록』 권3 태종 2년(1402) 4월 갑술]. 사찰의 토지는 국가비보소로 정해진 서울의 사찰에만 지급하고 지방의 사찰은 도선의 『밀기』에 정해진 곳 외에는 지급하지 않도록 하여, 사원 운영의 방침을 『밀기』에 따랐던 것이다. 이처럼 비보사찰을 책정한 기준은 『밀기』로서 고려 말까지 운용되었다.
신라 말에 시작된 비보사찰설은 고려 때 풍수설과 복합되어 크게 유행하였으나, 조선에 들어와서는 불교적인 비보는 약화하고 풍수적인 성격이 위주가 되며 민속신앙과 결합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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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추성(秋城) 법운산에 옥천사라고 있으니 옛날의 정원사(淨源寺)이다. 선각국사 도선 공께서 처음 개창한 비보사찰 삼천 곳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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