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불기 |
|---|---|
| 한자 | 佛紀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남방불기, 북방불기, 세계불교도우의회, 입멸, 반열반 |
불멸기원의 줄임말로, 석가모니가 입적한 해를 기준으로 한 연대 표기법
불멸기원(佛滅紀元)의 줄임말로, 석가모니가 입적(入寂)한 해를 기준으로 한 연대 표기법이다. 불멸 연도에 관해서는 여러 전통이 있고 지금도 다양한 주장이 논의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불기에 관한 전통은 남방불기와 북방불기가 있다. 남방불기는 스리랑카‧태국‧미얀마에서 채택한 것으로, 기원전 544년(혹은 543년)을 기준으로 한다. 『대사(大史, Mahāvaṃsa)』를 기준으로 하면 불멸 연도를 기원전 544년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방불기는 한국‧중국‧일본에서 사용해 온 것으로, 기원전 1027년을 기준으로 한다. 『파사론(婆沙論)』‧『법원주림(法苑珠林)』‧『전등록(傳燈錄)』 등에는 석가의 탄생을 소왕(昭王) 24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보면 불멸 연도는 기원전 1027년이 된다는 것이다. 1956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불멸 2500주년을 기념하는 제4차 불교도대회가 열렸는데, 한국은 이를 기점으로 북방불기 대신 남방불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아직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이 가운데 몇 가지 학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원전 404년(혹은 403년) 설이다. 스리랑카의 또 다른 역사서인 『소사(小史, Cūḷavaṃsa)』에서는 불멸후 100년에 아소카왕이 즉위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하면 불멸 연도는 기원전 404년(혹은 403년)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기원전 483년 설이다. 불멸후 매년 우안거가 끝날 때마다 율장에 점을 하나씩 찍어서 경과한 햇수를 표시하였는데, 중현(衆賢, Saṅghabhadra)이 『선견율비바사』를 번역한 다음 해인 490년 우안거를 마치고 점을 찍음으로써 975개의 점이 찍히게 되었다. 이에 의거하면 불멸 연도는 기원전 48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기원전 486년 설이다. 칙령비의 기록에서 아소카왕의 즉위 연도를 기원전 268년으로 보고 『대사』에서 아소카왕이 불멸후 218년에 즉위했다는 내용을 받아들인다면 불멸 연도는 기원전 486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불기는 남방불기, 즉 기원전 544년을 기준으로 삼고 있을지라도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 집필자 : 우동필
용례
-
사문 승가발타라는 중국말로는 중현(衆賢)이며, 서역 사람이다. 마음속에 도를 품어 아무 거리낌이 없었고, 교화와 은혜를 베푸는 것이 한이 없었다. 『사자상전(師資相傳)』에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 우바리(優波離)는 율장(律藏)을 결집(結集)하고, 그해 7월 15일에 자자(自恣)를 마쳤다. 향과 꽃으로 율장에 공양한 뒤 바로 한 점을 찍어 율장 앞에 놓았다. 해마다 이와 같이 한 점씩을 찍다가 우바리가 열반하려 할 때 그것을 가져다 제자 타사구(陁寫俱)에게 전하였고, 타사구가 열반에 들면서 또 제자 수구(須俱)에게 전하고, 수구는 또 제자 실가바(悉伽婆)에게 전하고, 실가바는 또 제자 목건련자제수(目揵連子帝須)에게 전하고, 목건련자제수는 또 제자 전다발사(旃陁跋闍)에게 전하였다. 이와 같이 하면서 스승이 제자에게 서로 전해 오다가 지금의 삼장법사(三藏法師)에게까지 전하여졌다.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