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별좌 |
|---|---|
| 한자 | 別座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원주, 유나 |
⑴ 절에서 반찬과 음식을 만드는 소임, ⑵ 별도로 설치한 자리
⑴ 절이나 총림에서 창고와 주방 살림을 하는 후원 소임 가운데 하나이다. 부처님과 수행자에게 공양할 반찬과 음식을 만드는 임무를 수행한다. 전좌(典座)라고도 하며 음식 재료의 준비와 취급, 식단 작성, 부엌의 정돈 등 공양간 살림 전반을 운영하고 관리한다. 다른 한자어 별좌(別坐)는 조선시대 관직 이름이다.
예부터 “별좌 스님이 되는 것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열심히 그 직책에 힘쓰는 것이며, 이 또한 불교 수행에 힘쓰는 일이다.”라고 하여 수행의 한 과정으로 여겼다. 별좌의 지시를 받아 하루 세 때 반찬을 만드는 소임을 맡은 승려를 채두(菜頭)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채로(菜露) 또는 채공(菜供)이라고도 한다.
별좌는 음식물을 다룰 때 정성과 청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상주물(절에 딸린 재물)을 아껴야 하고,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또한 부처님께 올리는 채소는 반드시 익혀 날채소를 그대로 올려서는 안 되고, 먼저 맛을 보아서도 안 된다. 또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려고 음식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또 달리 총림, 선원, 절에서 살림을 관리하는 직책(소임)으로 원주가 있다.
⑵ 이미 배치된 자리 이외에 어떤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마련하는 자리를 말한다. 경전에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감동하거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받은 환희심에 보답하고자 특별한 좌석을 설치한 예가 보인다.
왕을 비롯한 세속의 귀인들을 대우하고자 마련하기도 한다. 『중아함경(中阿含經)』 권31에서 “여기에 별좌가 있으니 대왕께서 앉으셔도 됩니다.”라는 대목이 그 예이며, 『생경(生梗)』 권1에도 왕이 “별좌에 앉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어떤 경전을 읽는 결사를 맺고 경전을 풀이하는 사람이 앉을 별좌를 정하기도 하며, 어떤 단체나 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찾아올 때도 그 차이를 분명하게 두기 위하여 별도로 자리를 갖추기도 한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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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佛殿)을 보고는 다만 불전이라 부르고, 주장자를 보고는 다만 주장자라 부를 것이다. 이것은 유나(維那)의 방이고 저것은 전좌(典座)의 방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승은 승이고 속은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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