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마하연

한글마하연
한자摩訶衍
산스크리트어mahāyāna
유형용어
키워드대승, 마하연(사찰), 삼예사원의 논쟁, 유점사, 의상, 수월, 만공, 효봉, 성철, 청담, 자운
⑴ 마하야나의 음사어로 대승의 의미, ⑵ 8세기 말 활약한 중국의 선승, ⑶ 사원의 명칭
⑴ 마하야나(mahāyāna), 즉 대승(大乘)의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음사한 말이다. 마하(mahā, 大)를 ‘마하(摩訶)’로, 야나(yāna, 乘)를 ‘연(衍)’으로 표기한 것으로서, 대승과 같은 의미이다. 대승은 부파불교(部派佛敎) 말기에 기존의 부파를 소승으로 규정하고 자기만의 깨달음을 벗어나 타인의 제도까지 근본으로 삼고, 출가자 중심에서 재가자도 평등하게 중시하는 등의 취지를 표방하며 등장한 움직임이다. 이에 따라 불전 곳곳에서는 마하연이 대승이라는 용어와 함께 널리 사용되었다. 대승 경전을 마하연경(摩訶衍經) 혹은 마하연장(摩訶衍藏)으로 일컫기도 하며, 대승의 길을 마하연도(摩訶衍道), 대승의 수행자를 마하연인(摩訶衍人) 등으로 일컫는 등 여러 용어와 결합되어 널리 사용된다.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 권3에서는 마하연의 특징으로 의지할 대상이 없음[無所倚], 얻을 결과가 없음[無所得], 볼 수 있는 대상이 없음[無所見] 등을 들고 있다. ⑵ 여러 승려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일반적으로 8세기 말에 활약했던 중국의 선승 마하연(摩訶衍)을 가리킨다. 8세기 무렵 티베트에 불교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중국불교를 수용할 것인지 인도불교를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티송데첸(khri srong lde btan, 742~797)왕 앞에서 어전(御前) 논쟁이 벌어졌다. 이때 인도불교 측 논사 카말라실라(kamalaśīla, 740~795)를 상대하는 중국불교 측 논사로 참여한 인물이 바로 마하연이다. 일명 ‘삼예(bsam yas) 사원의 논쟁’으로 일컬어지는 이 대논쟁은 ‘인도 중관학파와 중국 선종의 논쟁’, ‘돈점논쟁(頓漸論諍)’ 등으로도 불리며, 티베트 불교사에서 중요 사건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⑶ 금강산에 존재했던 사원의 명칭이다. 유점사(楡岾寺)의 말사로서 현재는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그 터만 존재한다. 금강산 마하연은 661년 의상(義湘, 625~702)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해동 제일 선원’으로 일컬어지는 등 규모가 작지 않은 사원이었다. 특히 수월(水月, 1855~1928)·만공(滿空, 1871~1946) 스님이 조실로 주석하며 후학을 이끌었던 적이 있고, 효봉(曉峰, 1888~1966)·성철(性徹, 1912~1993)·청담(靑潭, 1902~1971)·자운(慈雲, 1911~1992) 등의 스님이 주석하며 정진하기도 하였다. 금강산 마하연은 현대 한국불교의 요람으로 일컬어질 만큼, 근현대 한국불교의 고승 상당수가 거쳐 간 유서 깊은 사원이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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