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계단 |
|---|---|
| 한자 | 戒壇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금강계단, 방등계단 |
수계의식을 거행하는 단이나 그 장소
수계의식을 행하기 위해 쌓아 올린 단을 말한다. 계를 설하는 장소라는 뜻에서 계장(戒場, 界場)이라고도 한다. 계단은 흙이나 나무로 만들며 평지보다 높은 곳에 설치한다. 인도 나란타사(那蘭陀寺)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국은 3세기 중반에 낙양(洛陽)에 계단을 쌓았다고 전한다. 『사분율행사초간정기(四分律行事鈔簡正記)』에서는 전장(戰場)의 격구장(擊毬場)처럼 평탄한 곳을 장(場), 토대를 쌓아 올려 높은 곳을 단(壇)이라고 구별하여 정의한다.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에서는 “외국의 계장은 노지(露地)에 많이 있는데 세간의 제단(祭壇)이나 교사(郊祀)를 지내는 장소와 같다. 율에서는 계단이라고 한다.(外國戒場多在露地, 如世祭壇郊祀之所, 故律中或名戒壇.)”라고 한다. 대승방등의 경문에 근거하여 설립한 계단은 방등계단(方等戒壇)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장(慈藏, 590~658)율사가 통도사에 최초로 건립하였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에게 귀의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통도사를 창건하고 여기에 계단을 설치한다. 현재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보수된 것이다.
또 신라 때 진표(眞表)율사가 금산사에 설치했다고 하며, 현재 남아 있는 방등계단은 돌을 사용해 2층으로 쌓았는데 가운데에 석종형의 부도가 있다. 혜거(惠居, ?~974)대사가 917년 금산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고 전한다.
신라 말 고려 초에 구족계를 받은 스님들이 계단에서 수계를 받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행적(行寂, 832~916)은 855년에, 형미(迥微, 864~917)는 882년에 화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개청(開淸, 835~930)은 9세기 후반에 엄천사(嚴川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고려시대에는 영통사(靈通寺), 숭법사(崇法寺), 보원사(普願寺), 동화사(桐華寺)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당나라 때 도선(道宣)이 계단의 기원과 명칭에 관해 쓴 『관중창립계단도경(關中創立戒壇圖經)』 1권의 목록이 『개원석교록』 2권, 3권에 전하며, 원본은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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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9세에 출가를 간절히 바랐고 11세에 사충(嗣忠)에게 나아가 머리를 깎았으며 다음 해에 금산사 계단(戒壇)으로 가서 구족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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