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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마촉지인

한글항마촉지인
한자降魔觸地印
산스크리트어bhūmi-sparśa-mudrā
유형용어
키워드마라, 마군, 팔상도, 간다라
석가모니 붓다가 마라(摩羅)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표현한 수인
인도 쿠샨왕조 때 불상을 최초로 조각하던 간다라 지역의 불상은 불상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각기 다른 손가락 모양을 조각했는데 이를 수인(手印, mudrā)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붓다의 불상 가운데 초기에 많이 등장하는 수인은 설법인(說法印)이지만, 이후 수인이 다양해지면서 후대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형태는 좌선할 때의 손 모양에서 오른손을 풀어서 오른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을 취한다. 항마촉지인은 석가모니 붓다가 성도하기 전 마왕 파순(波旬)과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붓다가 수행자 싯다르타 태자로서 금강좌(金剛座)에 앉아 수행에 집중할 때 마왕 파순이 방해하려다 실패하자 마지막으로 마왕의 군대를 동원해 위협했다. 파순은 직접 나서 "나무 아래 앉아서 무엇을 구하는가? 너는 신성한 금강보좌에 앉을 가치가 없다."라고 외쳤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이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다. 지신(地神)이여, 이를 증명하라."라고 하면서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얹고 가운뎃손가락으로 땅을 가르켰다.“라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내용도 있다. 싯다르타가 오른손을 들어 “이 땅은 능히 일체의 물건을 내 차별 없이 평등한 행을 하였도다. 지금 진실을 말하라.”라며 땅을 가리키자 지신이 “가장 큰 대장부시여, 내 당신을 증명하리다. 제가 아나이다.”라고 외쳤다. 순간 대지와 삼천대천세계의 국토는 크게 두루 진동하였다. 우렁찬 소리에 마왕 파순은 도망치고 말았다. 인도 불전 가운데 붓다의 전기를 기록한 것을 불전문학(佛傳文學)이라 일컫는데, 『태자서응경(太子瑞應經)』, 『보요경(普曜經)』,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에 비슷한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인도불교에서 유래한 항마촉지인은 인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조성된 석가모니 붓다의 불상에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고려시대에 걸쳐 석가모니 붓다의 항마촉지인과 비로자나여래의 지권인(智拳印)을 한 불상을 많이 볼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석굴암의 석가모니 붓다 불상은 경덕왕 때 김대성이 발원하여 경덕왕 10년(751)에 조성하기 시작하였고, 그가 죽은 혜공왕 10년(774)에도 끝나지 않아서 나라에서 완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원형석실의 중앙에 모신 불좌상은 깨달은 부처의 자세인 항마촉지인을 하였고 주변 벽에는 범천과 제석천,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 그리고 십대제자와 십일면관음보살상이 부조로 둘러져서 중앙의 본존상을 향한 자세로 서 있다. 이 밖에 석가모니 붓다의 조성은 협시보살로 오른쪽에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과 왼쪽에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이 배치되어 있으며, 관음보살(觀音菩薩)과 미륵보살(彌勒菩薩) 등을 협시보살로 배치한 경우도 있다.
· 집필자 : 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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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불상의 의례적 기능과 항마촉지인 예배상의 등장—공양 대상으로서의 불상의 기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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