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폐불훼석 |
|---|---|
| 한자 | 廢佛毁釋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신불습합 |
근대 일본에서 일어났던 불교 배격 운동
‘부처를 버리고 석가의 가르침을 깨뜨린다’라는 의미이다. 의미 자체는 파불(破佛), 법난(法難) 등의 유사한 용어와 함께, 역사상 각지에서 일어났던 불교에 대한 박해 사건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폐불훼석’이라고 하면, 대개 근대 일본에서 일어났던 불교 배격 운동을 의미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래, 350여 년간 유지되어 오던 막부(幕府) 정치가 종식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였다. 새로운 정권은 천황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신도주의(神道主義)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천황의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고대 율령제(律令制) 아래에서 천황이 모든 신사(神社)를 통섭하며 제사를 담당하던 제정일치(祭政一致) 체제의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재확립하고자 한 것이었다.
메이지시대 이전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일본의 고유 신앙인 신도(神道)와 불교가 융합된, 이른바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신앙 형태가 존속되고 있었다. 본지(本地)인 부처와 보살이 신(神)의 모습으로 수적(垂迹)했다는 본지수적의 사상이나, 별당승(別當僧)이라고 하여 신사에서 제사나 의식을 거행하는 승직(僧職)의 존재는 신불습합의 대표적 사례이다. 새로운 정권은 이러한 불교적 색채를 신사에서 지워 버리기 위한 신불분리정책(神佛分離政策)을 시행하였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시작된 신불분리정책은 승려와 신직(神職)의 대립감정 등으로 인해 점차 불교 배격이라는 과격한 행동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는 신위대(神威隊)가 신사에 있는 불상, 불구, 경전 등의 불교적인 물건을 파괴하는 식으로 자행되었다. 한편 정책적으로는 불교 사찰을 종파별로 폐사(廢寺)하거나 합사(合寺)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승려가 환속을 당하였고, 셀 수 없을 정도의 사찰과 불상, 경전이 파괴되었다. 심한 지역은 지역 내 불교 사찰 전체가 소각된 곳도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폐불훼석이라고 일컫는다.
폐불훼석에 맞서 불교계에서는 격렬한 호법(護法)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정토진종에서 저항이 심했는데, 정토진종의 승려 시마지 모쿠라이(島地默雷)는 서구 사상에 영향을 받아 정치와 종교의 분리,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또한 각 종파에서는 여러 개혁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교단의 재편성이 이루어졌고, 종무원이나 종의회의 설치 등 의회정치를 모델로 한 근대적 조직으로의 개편이 단행되었다.
폐불훼석과 불교계의 호법 운동, 개혁 조치 등의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일본의 불교계는 세속 질서에 공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메이지 시기 이후에는 국가가 목표로 한 이데올로기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게 되었으며, 세속 질서에 공헌한다는 자세는 다이쇼(大正), 쇼와(昭和)의 전쟁 때까지 일관하게 된다. 이 점은 근대 일본 불교계의 폐단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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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42호 |
明治時代에入하야는 神佛分離의大事件이起하야 毀釋排佛의悲慘한歷史가잇섯스나 一時的임에不過하얏스며 諸宗派가對立하야 敎學硏究와制度變更이잇서서 서로서로奇觀을呈하얏스나 實은舊時代의狀態를延長維持하야新時代의思潮와學風을加味함에不過하다고하겟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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