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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시도

한글평상심시도
한자平常心是道
유형용어
키워드다반사
평범한 일상의 마음이 곧 도라는 뜻으로, 선가(禪家)의 공안 중 하나
선가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구로, 깨달음을 열어 주는 과제인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이다. 마조 도일(馬祖道一)부터 유행하였고, 조사선의 모든 선법에 들어 있는 일종의 지침이다. 마조는 평상심이 도라고 하면서 “무엇을 평상심이라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是非)가 없으며, 취사(取捨)가 없고, 단상(斷常)도 없으며 범부와 성인의 차이도 없다.”라고 정의한 다음 “바로 지금 일상의 모든 행동거지에서 상황에 응하고 만물과 부딪히는 그 모두가 도이다.”라고 그 의미를 확장하였다. 이로부터 보면, 평상에서 ‘평’은 시비 등 일체의 대립이 평평하여 높낮이의 차별이 없다는 뜻이고, ‘상’은 언제 어디서나 빈틈이나 끊어짐이 없다는 뜻이다. 평상심은 평소 일상의 마음이니 밥 먹고, 차 마시며, 일하는 평범한 마음이다. 평범한 일상이 그대로 도와 하나인 본마음이라는 뜻이니 도(道)라는 것이 어떤 특별한 무엇이 아닌 평소 일상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평상심은 깨달은 이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깨달은 사람이어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도 다반사(茶飯事)로 평상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인 평상심은 깨달은 이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즉 시비, 취사, 단상, 범성(凡聖)이 없으며 억지로 조작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만이 평상심이 도인 경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조의 선법을 이은 남전 보원(南泉普願) 선사와 조주 종심(趙州從諗)의 다음 문답은 평상심의 도를 대표적으로 나타낸다. 조주가 도가 무엇인지 물었고, 남전이 “평상심시도.”라고 한 것이다. 이어 조주는 어떻게 도에 나아가야 하는지 물었고, 남전은 나아가려 하면 어긋난다고 대답한다. 도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조주의 질문에 남전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있지 않으니, 아는 것은 허망한 느낌이요 모르는 것은 무기(無記)이다. 분별하며 머뭇거리지 않는 도를 참으로 통달하면 마치 허공이 넓게 트인 듯 되리니, 그 어찌 옳고 그름을 따지리오. 이 말에 조주가 깨달았다고 전한다. 공안을 참구하는 안목에서는 이 말에도 또는 이 말을 듣고 깨달았다는 말에도 매몰되고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고귀한 성현의 지고지순한 말이나 행위일지라도 진정 나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낱 남이 먹다 남긴 국이나 쉰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선문염송설화』 407칙 법진 수일(法眞守一)의 송에 “평상심이 도라는 이치 이해하고 싶은가? 평상에 머물지 않아야 도가 깊어지노라.”라고 하였고, 죽암 사규(竹庵士珪)는 “평상심이 도라 여긴다면 가지와 넝쿨에 다시 쓸모없이 가지와 넝쿨을 자라게 하는 꼴이다.”라고 하였다. 평상이니 도이니, 깨달음이니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말 자체는 혹처럼 쓸데없이 덧붙이는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안목이 공안 참구법의 요체이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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