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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한글지혜
한자智慧
산스크리트어prajñā
팔리어paññā
유형용어
키워드관법, 사성제, 사념처, 집멸, 고멸, 여실지견
연기(緣起), 사성제(四聖諦)를 깨달아 고통의 소멸을 실천하는 것에 관한 앎
연기(緣起), 사성제(四聖諦)를 깨달아 실천하는 것에 관한 앎을 말한다. 지혜는 ‘미리’, ‘앞에’를 뜻하는 ‘파(pa)’와 ‘알다’를 뜻하는 어근 ‘(ñ)ñā’에서 파생한 팔리어 판냐(paññā)의 역어로, 깨달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깨달음은 고통과 고통 소멸의 진리에 관한 것이다. 통상적인 시각에서 앎은 대상 세계에 관한 앎이나 경험, 추론을 바탕으로 축적된 지식을 말한다. 그에 비해 불교의 지혜는 ‘앎에 관한 앎’과 같은 메타적 방식에서 고통의 구조와 고통의 소멸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연기는 ‘(고통의) 조건이 되는 법들로부터 (고통의) 함께 발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갈애(渴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의 12법이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다’는 인과관계로부터 발생한 것이다(DN. II, 55-64쪽). 대표적으로 무명은 사성제를 알지 못하는 범부의 인식을 말하고, 행은 의도와 업으로서 성향이나 습성을 형성하는 것이고, 갈애는 존재에 관한 욕구이며, 취는 취착이나 집착을 말한다. 통상적인 시각에서 앎은 자아와 소유물이 있고 다른 대상이 있다고 아는 것인 데 비해, 연기는 자아나 소유물에 관한 견해들이 스스로 지각과 의식 활동의 조건 속에서 12법의 연쇄를 통해 구성되고 지속적으로 출현하여 고통에 예속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MN. I, 162-163쪽). 연기에서 고통의 특성, 고통의 집기(集起)와 소멸[滅], 그리고 고통의 소멸의 수행법인 팔정도(八正道)는 사성제로 체계화된다. 이 지혜는 여실지견(如實知見), 삼법인(三法印), 계(戒)·정(定)·혜(慧)‒팔정도(八正道)와 연관되어 설명된다. 여실지견은 ‘있는 그대로에 관한 앎과 견해’인데 여실이란 관계대명사(ya)로 지칭되는 현상과 지시대명사(ta)로 지칭되는 현상이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상을 갖지 못해 고통스러울 때(ya), 취착을 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연하여 고통(생·노사)이 있다(ta)처럼 관찰하는 것이 여실지견이고 지혜이다(SN. II, 17쪽). 삼법인에서 모든 현상의 특성은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이다. 초월적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영속성[常]을 궁극적 행복[樂]으로 간주하여 본래적 자아[我]라고 간주한다면, 지혜는 그 주장에 대해 영속한 것은 없고[無常] 영속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苦] 따라서 자아라고 간주할 만한 것은 없다[無我]고 깨닫는 것이다(MN. I, 435쪽). 지혜는 계·정·혜‒팔정도의 구조 속에서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로 설명된다. 팔정도는 정견, 정사유,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계·정·혜는 팔정도를 다시 체계화하는데, 계는 정어, 정업, 정명을 포함하고 정은 정정진, 정념, 정정을 포함하며 지혜는 정견, 정사유를 포함한다(MN. I. 301쪽). 이처럼 지혜는 고통을 발생시키는 원리들을 깨닫고 그 집(集)·멸(滅)을 관찰하여 고통의 소멸을 증득하는 앎이다.
· 집필자 : 우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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