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지권인

한글지권인
한자智拳印
유형용어
키워드수인, 『화엄경』, 『금강정경』, 오불(五佛), 오지(五智)
비로자나여래가 결하는 수인으로, 왼손을 가슴 앞에 대고 검지를 세운 뒤 오른손으로 검지를 쥔 형태
비로자나불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수인이다. 『화엄경』의 교주인 비로자나여래의 지권인과 밀교경전인 『금강정경(金剛頂經)』의 금강계만다라(金剛界曼茶羅)에 근거한 지권인 두 가지 형태가 조성되었다. 『화엄경』의 경우 중생을 일체법계를 포용하는 형태로서 법신 비로자나여래의 자내증(自內證)의 깨달음을 상징하며, 『금강정경』의 경우 오른손 다섯 손가락이 곧 제불의 오지(五智)를 구성하는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상징하여 오지의 보관을 쓴 법신불의 모습을 표현한다. 불공삼장(不空三藏)이 번역한 『이취경(理趣經)』에는 비로자나여래의 본체가 곧 중생계의 현실로 유출되는 깨달음을 설하여 중생계가 여법한 진리의 세계임을 설하였다. 인도에서 비로자나여래 불상 조성은 밀교가 유행하던 8세기경 등장하며 인도 오리사주(州) 랄리타기리 사원지에서 발견된 금강계 비로자나여래상은 오른손으로 왼손 손가락들을 감싸 쥐고 있는 형태로 왼손 손바닥이 위를 향하고 있어 지권인보다 설법인에 가까운데, 이것은 인도 비로자나여래의 초기 지권인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다. 동아시아불교의 지권인 조성은 중국의 경우 『금강정경』에 근거해 보관과 영락을 걸치고 지권인을 취한 형태이다. 반면 한국불교에서는 8세기 중반 통일신라 시대부터 비로자나여래가 조성되었는데 맨 처음 조성된 것은 석남사 관음암의 석조 비로자나불상으로 장신구가 없는 여래형이었다. 8세기에는 중국에서 선무외(善無畏)삼장과 금강지(金剛智)삼장이 밀교경전인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을 번역한 시기로 신라의 화엄계 승려들이 밀교를 배우기 위해 중국에 유학하였고 의림(義林) 같은 승려들은 귀국하여 밀교를 널리 포교한 시기였기 때문에,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비로자나여래 불상은 화엄계 불상과 금강계 밀교 불상이 융합된 형태로 추정된다.
· 집필자 : 정성준

관련기사

관련자료

    이미지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상세정보 출처
    더보기  +
  • 대락금강불공진실삼매야경(大樂金剛不空眞實三麼耶經)
    고서 상세정보
  • 더보기  +
  • 밀교학의 기초지식
    도서 정성준 | 서울: 이스트워드 | 2006 상세정보
  • 9세기 비로자나불 조성의 배경과 의미
    학술논문 강희정 | 한국고대사탐구 | 13 | 서울: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2013 상세정보
  • 더보기  +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